대법원 정면 꼬집어 빛난 청주지법 ‘판사회의’

22일 현재 12개 법원에서 판사회의…향후 시들해질 듯 기사입력:2012-02-22 17:36:20
[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법원장 단독으로 평가하는 ‘근무평정 불량’을 이유로 한 서기호 판사(사법연수원 29기)의 연임(재임용) 심사 탈락으로 촉발된 소장 법관들의 ‘판사회의’가 잇따라 열리고 있는 가운데, 21일에는 서기호 전 판사가 소속돼 있던 서울북부지법에서도 열려 관심을 모았다.

이번 판사회의는 2009년 5월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근무시절인 2008년 촛불집회 재판 개입 파문 이후 3년 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서울중앙지법에 소속돼 있던 서기호 판사는 단독판사회의와 전국법관워크숍을 주도적으로 관여했으나, 이번엔 자신의 문제로 판사회의가 열리고 있는 것.

대법원에서 펄럭이는 법원 깃발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서울남부지법, 서울서부지법 등 서울지역 3개 법원을 시작으로 20일 대전지법과 의정부지법, 21일 서울북부지법, 부산지법, 수원지법, 광주지법, 춘천지법, 청주지법, 22일에는 인천지법 등 지금까지 모두 12곳에서 열려 판사들이 이번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판사회의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지난 17일 개최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이었다. 전국 최대 규모의 법원으로 판사들이 가장 많이 소속돼 있어 향후 흐름과 다른 법원에 미칠 파장을 읽을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은 판사회의에서 “이번 연임심사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재판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면서 “현행 연임심사제도가 객관성과 투명성이 담보되고, 방어권이 보장되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대법원에 요구했다.

이날은 마침 연임심사에서 탈락한 서기호 판사가 법복을 벗고 퇴임하는 날이어서, 서 판사에 대한 ‘구명’ 논의가 이루어질 지가 최대 관심 사안이었으나 논의가 되지 않았다.

특히 21일 열린 서울북부지법 판사회의에 이목이 쏠렸다. 왜냐하면 서울북부지법은 서기호 전 판사가 퇴임 전 소속돼 있던 법원으로 아무래도 최근까지 함께 근무했던 동료 판사들이 서 판사 탈락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나, 한발 더 나아가 ‘구명’에 대한 목소리를 내놓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 서울북부지법 판사회의, 서기호 전 판사 구명 논의 안 해

하지만 이날 서울북부지법 단독판사 25명 중 19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판사회의에서는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 및 연임심사제도는 헌법적 가치로서의 재판의 독립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도록 운영돼야 한다”는 내용의 평이한 수준의 결의문을 채택하는데 그쳤다.

판사들은 다만, 이를 위해 종전 근무평정방식 및 연임심사에 대한 전반적인 제도개선책으로 객관적인 평가자료의 수집, 다양하고 공정한 평가방법의 개발, 충분한 반론권 및 불복절차의 보장, 중립적인 인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등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향후 법관인사제도 개선과 관련해 일선 법원의 판사들이 논의한 내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장할 것과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가 인사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는데 있어서도 대표성을 지닌 각급 법원 판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대법원에 촉구했다.

서울북부지법 판사회의 결과는 다른 법원과 마찬가지로 한마디로 향후 제도 개선책 마련에 대한 요구뿐이었다.

판사회의 결과는 논의된 내용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을 압축된 표현으로 작성해 대법원에 전달하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언론은 그 문구 하나에 의미를 재해석하며 주목해 보도한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을 모은 서울중앙지법이나 서울북부지법 판사회의가 아닌, 부산지법과 청주지법 판사회의에서 대법원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결의문이 채택돼 눈길을 끌었다.

◈ 부산지법 판사회의 “법관 독립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

21일 부산지법은 단독판사 50명 가운데 32명이 참여한 가운데 판사회의를 열었는데, 회의결과 “이번 법관연임심사 과정에서 드러난 법관 근무평정 및 연임심사의 기준과 절차에 관한 문제가 법관의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성이 있음을 우려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 및 연임심사제도는 헌법적 가치로서의 재판의 독립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도록 운영돼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서울북부지법 판사회의와 “이번 연임심사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재판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서울중앙지법 판사회의와 비교할 때 부산지법 판사회의의 “법관의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는 표현은 강도가 세다.

부산지법 판사회의는 그러면서 대법원에 법관 근무평정과 연임심사제도의 개선에 관한 광범위한 검토를 요청했다. ▲구체적 사실에 근거한 근무평정 및 연임심사 ▲근무평정 주체의 다원화 ▲근무평정 공개와 반론권 보장 ▲연임 부적격 심사 대상자에 대한 일체의 평정자료 공개 ▲법관인사위원회 이원 공개와 그 임명 절차에 있어 공정성, 중립성, 투명성 확보 등 5가지다.

아울러 “대법원 산하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에서의 인사제도 개선에 관한 논의가 일선 법원 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 보장과 적절한 정보 제공을 통해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질 것을 요청한다”고 대법원에 요구했다.

◈ 청주지법 판사회의, 대법원 연임심사 문제 정면 꼬집어

판사회의의 방점을 찍은 것은 청주지방법원이었다.

21일 청주지법 단독판사 및 배석판사 29명 중 21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판사회의에서 “이번 법관연임심사에는 연임거부의 기준이 불투명하고, 상대평가에 의한 근무평정자료를 연임심사의 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당사자에게 연임거부사유를 사전에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이에 따라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연임거부 기준 불투명’, ‘연임심사 자료 사용 부적절’, ‘방어권 보장 않은 건 중대한 문제’라는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을 써가며 이번 서기호 전 판사에 대한 대법원 연임심사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꼬집었다.

판사들은 또 “이런 이유로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며 “향후 평정제도 및 법관연임심사 제도의 개선을 위한 대책기구를 구성하고, 그 기구에 일선 판사들의 대표를 참석하게 하는 등 일선 판사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대법원에 촉구했다.

◈ 수원지법 단독판사회의 “연임심사, 절차적 정의 현저희 훼손”

수원지법도 청주지법에 만만치 않은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단독판사 47명 가운데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수원지법 단독판사회는 먼저 “우리는 법관 또한 평가로부터 예외일 수 없다는 점과 연임심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동의한다”며 “다만,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보편적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한계 내에서 평가와 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판사회의는 특히 “우리는 이번 연임심사가 사법신뢰의 근간을 이루는 절차적 정의를 현저히 훼손했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한다”며 “우리는 이번 연임심사에 적용된 부적격 판단기준이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어렵게 하고 사법관료화를 심화시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는 연임심사 절차가 개선돼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한다”며 “연임부적격 대상자의 선별기준은 미리 법관들에게 공개돼야 하고, 부적격 대상자에게는 상당한 기간 전에 부적격 사유를 구체적으로 통보하고 관련 자료까지 충분히 제공해 실질적으로 소명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연임적격 판단의 기준도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를 냈다. 판사회의는 “근무평정이 법관의 신분을 좌우하는 연임심사의 기초가 되기 위해서는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을 담보할만한 제도적 개선책이 면밀한 검토를 거쳐 마련돼야 한다”며 “연임심사와 근무평정의 개선에 관한 논의가 대표성을 지닌 일선 법원 판사의 적극적이고 계속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청했다.

앞서 지난 17일 열린 서울남부지법 판사회의는 “이번 법관 연임심사가 불명확한 심사기준과 투명하지 않고 완비되지 못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법관의 독립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한다”는 회의결과를 내놓으며 ‘완비되지 못한 절차’라는 표현으로 지적했다.

◈ 서기호 전 판사 “구명 논의는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 굉징히 부담스런 주제”

한편, 판사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구명 논의까지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해 서기호 전 판사는 “그 부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기 때문에 재임용 탈락 결정이 부당하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개입하는 형태가 되고, 또 개인적인 문제가 부각되면 필연적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의 책임 문제까지도 논의가 될 수 있어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주제”라고 이해했다.

22일 오후 5시부터 열리고 있는 인천지법 판사회의를 포함해 현재까지 전국 12개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렸다. 대법원도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 결과를 검토해 수용할 방침이고, 지금까지 판사회의 결과를 놓고 봤을 때 새로운 요구사항이 없어 향후 판사회의는 시들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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