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부장판사 “대법원장님, 판사들 간절한 뜻 헤아려”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한미 FTA 연구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 건의문 전달 기사입력:2011-12-09 21:09:39
[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인천지법 김하늘 부장판사가 ‘사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법주권을 침해하는지 연구팀을 구성해 연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제출했다.

당초 김하늘 부장판사의 제안에 동의를 표시한 판사는 175명까지 됐으나, 논의 과정에서 동의를 철회한 판사 9명 중 2명이 건의서 최종 제안 이후 다시 찬성 의견을 표시해 최종 건의문에는 168명이 이름을 올렸다.

그는 “저희 판사들의 간절한 뜻을 깊이 헤아리시어 건의를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는데, 주요 건의문 내용을 짚어봤다.

판사 168명이 동참한 건의문에서 김하늘 부장판사는 먼저 “존경하는 양승태 대법원장님. 대법원 산하에 한미 FTA 연구를 위한 공식적인 연구팀을 구성해 주실 것을 간곡히 건의합니다”라며 “판사들은 네거티브 방식에 의한 개방, 역진방지조항(Ratchet),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등 몇 개 조항이 한미 FTA의 불공정성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법률적인 관점에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조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들은 한미 FTA 중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ISD 조항이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이라는 주장에 주목하게 됐다”며 “ISD 조항이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조항이라는 주장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과연 정말로 미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기업도 ISD 조항에 의해 미국 연방정부나 주정부를 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것인지 보다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일 미국 기업은 한미 FTA에 의해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직접 ICSID에 제소할 수 있음에 반해, 우리나라 기업은 미국 연방정부나 주정부를 상대로 직접 ICSID에 제소할 수 없다면, 그 자체로 불평등 조약이라고 할 것이므로, 이 부분 규정을 보다 자세히 검토하고 상호주의에 입각해 그 표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한미 FTA에는 사전 동의 규정이 있어서 미국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ICSID에 제소하는 경우, 우리 정부가 무조건 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며 “앞으로 한미 FTA와 관련해 어떤 내용의 무슨 소송이 제기될지 모르는데, 이와 같이 일반적 포괄적으로 중재 동의를 간주한다면, 이것은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미 FTA가 이른바 네거티브 방식에 의한 개방을 채택함으로써 명시적으로 유보된 분야를 제외한 모든 상품과 서비스 시장에 대해 규율하고 있는 협정임을 상기해 보면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또 “ISD 조항은 우리가 FTA를 체결함에 있어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조항이 아니라 옵션 조항”이라며 “ISD 조항에 의한 분쟁해결절차가 우리나라보다 미국에 유리하게 돼 있다면, 우리나라가 미국과 FTA 협상을 할 때 이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를 위해 외교통상부에서 제시한 관련 자료도 반박했다. 외교통상부는 2010년 말 기준으로 미국 관련 ISD는 총 123건으로 미국 기업이 제소한 사건은 108건, 미국 정부가 제소당한 사건이 15건인데, 미국 기업이 외국정부를 상대로 제소한 108건 중 미국 기업이 승소한 사건은 15건으로 승소율이 13.9% 밖에 되지 않아 일방적으로 미국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는 “실질적으로 미국 정부가 제소당한 사건에서는 미국 정부의 승소율이 100%에 이르고 있고, 외교부 자료에 의하더라도 ISD를 이용하는 전체 제소자의 87.9%가 미국 기업이라는 사실은 ISD 조항이 명목상으로는 어떻든지 간에 현실적으로는 미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기업의 승소율이 13.9% 밖에 안 된다는 것도, 바꿔 말하면 그만큼 미국 기업들이 ISD 조항을 이용해 소송을 남발했다는 것이 될 수 있고, 일단 미국 기업에 의해 ICSID에 제소당하면 우리 정부는 비싼 미국의 로펌 변호사에게 막대한 소송비용을 치르면서 원치 않는 분쟁절차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몇 번 이러한 절차를 겪게 되면 우리 정부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취하려고 할 때마다 미국 기업으로부터 소송을 제기당할까 봐 눈치 보는 신세가 될 것”이라며 “다소 거칠게 비유하자면, 미국으로서는 ISD 조항은 서부시대에 총잡이들이 차고 다니는 총과 같은 것으로, 차고 다니기만 하면 굳이 뽑지 않아도 일반인들은 총잡이 눈치를 보면서 피해가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중요한 문제는 한미 FTA가 영문본과 한글본 합해 전체 1500페이지에 이르는 워낙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재판 업무에 시달리는 법관 개개인이 이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그로 인해 한미 FTA가 국내 법률과 동등한 규범적 효력을 가지고 우리나라 상품과 서비스 시장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법부 내에서 충분한 법률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만일 한미 FTA가 비준, 통과되기 이전에 우리 사법부가 그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지금 사회적으로 독소조항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 부분에 대해 법률적 차원에서 검토의견을 냈다면, 이와 같은 사회적 갈등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그 점에는 만시지탄이 있을 수 있지만, 이제라도 판사들은 대법원장께서 대법원 산하에 한미 FTA 연구를 위한 공식적인 TFT를 구성하고 한미 FTA와 관련된 여러 가지 법률적 문제점들을 검토해 그에 대한 의견을 국민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지금 한미 FTA에 대해 찬반대립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도 사실 그 내용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법률의 최종해석권한을 갖고 있는 사법부가 TFT를 구성해 공식적인 검토의견을 낸다면, 그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던지 간에 국민들의 의구심과 사회적 갈등을 상당부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위성을 역설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은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만 규범통제를 할 권한이 있는데, 아직 발효되지도 않은 한미 FTA에 대해 연구하고 그 검토의견을 낸다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한미 FTA는 국내 법률과 동등한 효력이 있는 조약으로서, 그 내용이 방대하고 통상교역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을 규율하고 있으므로, 비록 구체적인 사안이 계류되지 않더라도 법관들이 미리 그 내용을 연구하고 법률적인 문제점을 검토해 보는 것은 삼권분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또 “나아가 어떤 법률을 제정할 때, 그 법률을 적용할 기관인 사법부가 미리 법률에 관한 검토를 통해 의견을 내는 것이 삼권분립에 어긋난다고 할 수는 없다”며 “이제껏 국회에서 심의 중인 각종 법률안에 대해 대법원이 법률적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으며, 그에 대해 어느 누구도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삼권분립의 원칙이 가장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 미국에서도 법원이 자유무역협정에 관해 사법주권과 법원 판결의 최종성을 강조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있었고,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이를 존중해 ISD 제도를 수정, 보완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저희 판사들의 간절한 뜻을 깊이 헤아려 대법원 산하에 한미 FTA 연구를 위한 연구팀을 설치해 한미 FTA가 우리나라 사법주권을 중대하고 심각한 수준까지 제한하고 있는지 여부를 연구, 검토하는 조치를 취해 주실 것을 건의드리고, 연구 결과에 의해 한미 FTA에 대한 사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절한 과정을 거쳐 그 입장을 확립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대외적인 입장표명 여부를 검토해 주실 것을 건의드린다”고 거듭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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