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강행 처리된 직후, 현직 부장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판 글을 올려 ‘판사의 정치편향’ 논란이 된 것과 관련해 대법원이 법관들에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분별력 있고 신중하게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9일 대법원 청사에서 이태수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을 포함한 위원 11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4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를 통해 이같이 결정했다.
윤리위원회는 “법관의 품위유지의무는 직무와 관련된 부분은 물론 사적인 부분에서도 요구된다”며 “법관의 개인적인 행동과 모습은 국민의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윤리위는 “따라서 법관은 직무 내외를 불문하고 의견 표명을 함에 있어 자기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법관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놓이게 되거나 향후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 시킬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에 위원회는 법관들에게 페이스북 등 SNS 사용에 있어서도 위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보다 분별력 있고 신중한 자세를 견지할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윤리위는 “아울러 법관의 페이스북 등 SNS 사용 기준에 관하여는 이를 만들 필요가 있음을 공감하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그 기준을 마련하기로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페이스북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에 관한 비판 글을 올려 논란의 중심에 선 인천지법 최은배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2기)에 대해서는 법관윤리강령 위반에 대한 별도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페이스북 등 SNS 사용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성숙되지 못했고, 법관의 페이스북 등 SNS 사용에 관한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은 상태인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심의의견은 법관의 SNS 사용과 관련된 법관윤리 문제에 대해 최초로 의견을 밝혔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태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위원으로 정덕애 이화여대 교수, 차경호 MBC 기획이사, 전재중 변호사, 황상진 한국일보 부국장, 김영신 한국소비자원 원장,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 등 외부위원 7명이 위촉됐다.
법원내부 위원으로는 부위원장인 고영한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해 최재형 서울고법 부장판사, 강영욱 법원공무원교육원장, 박태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등 4명이 참여하고 있다.
앞서 인천지방법원 최은배 부장판사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강행처리된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 날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25일 기사와 사설을 통해 최 부장판사를 맹비난했다. 기사에서는 최 부장판사가 진보성향 판사들의 학술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소속임을 언급하며 ‘정치편향’ 논란을 거론했고, 사설에서는 “제대로 된 판사라면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또 “법관은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싫다면 법복을 벗는 게 정상”이라고 압박했다.
이로 인해 판사들의 SNS 사용이 ‘사적 공간’ 인지 ‘공적 공간’ 인지에 대한 논란이 되자, 이날 양승태 대법원장은 법관의 SNS 사용에 관련한 가이드라인 제시의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고 또한 최은배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심의를 회부했다.
마침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는 29일 ‘법관이 법정 언행 및 태도에서 유의할 사항’에 대한 심의 및 재산등록 비공개대상자에 대한 재산등록(변동)사항 심사결과 처리를 위해 회의가 소집될 예정이었다.
그러자 정치권은 물론 법원 안팎에서의 논란은 뜨거웠다. 우선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페이스북은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사적 공간이고, 기자가 취재를 시작해 최 부장판사가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 ‘기사화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며 글도 삭제했음에도, 언론이 개인적인 글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온 게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또한 대법원이 즉각 반응을 보인 것도 오해를 살만한데, 게다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은 혹시 징계까지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3기)는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진보편향적인 사람은 판사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겠지”라며 “그럼 보수편향적인 판사들도 모두 사퇴해라. 나도 깨끗하게 물러나 주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했다
27일에는 “오늘 개그콘서트 보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 시원하게 하는 개그맨들이 너무 부럽다. 그나마 하고 싶은 말 맘껏 할 수 있었던 페이스북도 판사는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나 페북 계속할거야”라는 글을 올렸다.
28일에도 “제가 페북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페북이 그 때 그 때 맘속에 남아 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마음 편히 털어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페이스북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적공간임을 강조했다.
특히 서울북부지법 변민선 판사(사법연수원 28기)가 28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은 법원공무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었다.
변 판사는 “법관 개인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사적으로 이야기 했던 것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와 소속된 단체만을 근거로 최은배 부장판사의 재판에 대한 공정성을 단죄하고, 나아가 법관들 개인이 할 수도 있는 의사표현을 위축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법관이 다른 공무원보다 더 많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해도 법관 개인의 사생활 및 표현의 자유는 보호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변 판사는 “대법원이 여론 일각에서 문제제기를 했다고 하여 곧바로 관련 법관을 징계 또는 윤리위원회에 회부한 것은 사법부 독립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외부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법관이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나요? 대법원장님도, 대법원도, 법관이 여론이나 권력의 눈치만 보는 순치된 법관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를 본 법원공무원들은 ‘절대 공감’을 표시하며, 대법원의 이번 윤리위원회 회부 결정에 대해 “너무나도 조급하고도 정치적인 결정”, “사법부답지 못한 결정”, “법원이 법관의 독립 자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는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수원지법 송승용 판사(사법연수원 29기)도 법원내부통신망에 “만약 최은배 부장판사에게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징계 기타의 불이익한 처분이 내려진다면, 저를 포함한 많은 판사들은 더는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본부장 전호일)도 28일 성명을 통해 “최은배 부장판사에 대한 윤리위원회 회부는 너무나 급박하고 경솔한 행위였다”며 대법원에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29일 오전 8~9시까지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전호일 본부장은 “이번 대법원의 조치는 개인의 사생활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법부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라며 “윤리위원회에서 사법부 독립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정이 나온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대법 “판사들 SNS 신중 사용”…최은배 부장판사 통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법관윤리강령 위반 여부 결론 내리지 않아 기사입력:2011-11-30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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