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사건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격리조치 등 초동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자가 살해되는 2차 범행이 발생했다면 국가에도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54)씨는 2007년 말부터 자신의 처인 B(48,여)씨가 부부관계를 회피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 외도를 의심하던 중 2008년 5월25일 새벽 3시경 제주시 연동 자신의 집에서 처와 외도를 따지며 말다툼이 벌어졌고, 부부관계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이에 순간 격분한 A씨는 처를 욕실로 끌고 가 처의 머리를 욕실 바닥에 수회 내리쳐 처가 많은 피를 흘리며 일어나지 못하자, 숨진 것으로 생각하고 4시40분께 경찰에 자진 신고했다.
순찰 중 “부인이 바람을 피워 자신이 부인을 죽였다”는 112 무전지령을 받은 경찰관 3명은 이날 새벽 4시47분께 범행 현장에 도착했다. 도착 당시 A씨는 식탁에 앉아있었고, 경찰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수갑을 채우거나 격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의가 벗겨진 채로 욕실에서 많은 피를 흘린 B씨는 숨지지 않은 상태로 발견됐고, 이에 경찰관은 119구급대 출동을 요청했다.
B씨가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된 A씨는 경찰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주방에서 흉기를 갖고 와 B씨의 옆구리 등을 수회 찔러 살해했다. 범행 후 A씨는 경찰관들에게 제압돼 수갑이 채워졌다.
그러자 B씨의 가족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긴급구호조치 및 용의자 격리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숨졌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반면 국가는 “A씨를 저지하지 못한 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범행으로 순발력의 한계 상황이므로, 경찰관들이 살인을 저지하지 못한 것이 직무상 의무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1심인 제주지법 제2민사부(재판장 윤승은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B씨의 유족들이 국가와 A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A씨와 국가는 연대해 망인의 자녀 3명에게 각각 5511만원, 망인의 어머니와 동생에게는 각각 4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가정폭력사건의 경우 실제로는 우발적이고 경미한 사안인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경찰관들이 ‘부인이 바람을 피워 자신이 부인을 죽였다’는 내용의 112 무전지령을 받고 범행 현장에 출동했으므로, 다른 일반 가정폭력 사건과 달리 취급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또 “경찰관들이 범행 현장에 도착한 이후 A씨와 B씨를 완전히 격리하고, 흉기의 소지 여부를 확인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의 심각성 및 절박의 정도, 살인 신고를 받고 출동해 확인한 피를 흘리고 있는 피해자의 상황 등에 비췄을 때 요구되는 경찰의 초동조치, 추가범행 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 등 경찰관들이 직무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따라서 피고 대한민국은 경찰관들의 이 같은 직무집행상 과실로 말미암아 발생한 사고로 인해 망인 및 그 유족인 원고들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인 광주고법 제주민사부(재판장 박흥대 부장판사)도 지난 3월 피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국가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제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26일 남편의 2차 범행으로 숨진 B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경찰관들의 직무집행상 과실로 2차 범행이 발생한 만큼 국가가 유족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다만 “출동한 경찰관들이 추가 범행을 막지 못한 데에는 당시 피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망인(남편의 2차 범행으로 숨짐)의 과실도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국가의 배상액 범위를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경찰 초동조치 미흡해 피살…국가 배상책임
대법, 피해상황 설명 않은 피해자도 책임…배상액 산액은 다시 심리 기사입력:2010-08-26 17: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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