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퇴임 김영란 대법관 “출세 아닌 고뇌의 자리”

“좋은 대법관이 되는 것만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길이라 생각해 최선” 기사입력:2010-08-24 13:22:09
[로이슈=신종철 기자] 여성 최초로 대법관에 임명돼 6년 임기를 마친 김영란(54) 대법관은 “제가 경험한 대법관의 자리는 출세의 자리도 아니었고, 법관들의 승진자리도 아니었다”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거기에서 바람직한 최선의 길을 찾는 고뇌의 자리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영란 대법관 김영란 대법관은 이날 대법원청사에서 가진 퇴임식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48)에 최초의 여성대법관으로서 출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면서 “몹시 불편하고 두려운 가운데 업무에 임해야 했고, 좋은 대법관이 되는 것만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며 비로소 무거운 짐을 홀가분히 벗었다.

김 대법관은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직책이 아닌 대법관으로서 과연 사법부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늘 골똘하게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법부를 선출직으로 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다수결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다수자의 권리를 확인하는 것에서 사법부의 존재근거를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다수자의 권리를 소수자의 그것과 단순히 대체하는 것은 소수자가 다시 다수자가 되는 논리이기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어서, 오히려 법치의 혜택을 점점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며 “평소 이런 생각으로 직책에 임했고, 다른 어떤 기준도 이러한 입장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6년 전 대법관에 제청된 날의 에피소드도 전했다. 그는 먼저 “대법관이 돼야겠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그때까지 그런 것을 의식하면서 판사생활을 해오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좋은 판사가 돼야겠다는 것만이 유일한 바램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대전고법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중 갑자기 대법관 제청자문회의의 ‘심의에 동의하라’는 요청을 받고 곧바로 심의부동의서를 제출했으나, 자문회의 측에서 ‘왜 심의단계부터 거부하느냐’는 연락이 있어, 부동의서를 철회했다.

그런데 2004년 7월 23일 오전 8시경, “출근하는 길에 ‘대법관에 제청되었으니 즉시 상경하라’는 전화를 받고, ‘오늘이 재판 날이니 재판을 해야 하는데요’라고 되묻기까지 했다”며 그 날의 생생한 기억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엔 고법원장이나 지방법원장이 대법관에 임명 제청되는 게 관례였기 때문에 고법 부장판사가 대법관을 꿈꾸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더욱이 사법시험 20회인 자신보다 대선배이자 여성 최초 법원장인 이영애 춘천지법원장(사법시험 13회)이 당시 최초 여성 대법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라 있었고, 뒤를 이어 나중에 헌법재판관이 된 전효숙 선배(사법시험 17회)와 광주지법원장을 거쳐 대법관이 된 전수안 선배(사시18회) 등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날 퇴임식에서 김영란 대법관은 1981년 처음 판사로 임명된 이래 30년간 봉직한 판사라는 직업의 짐을 덜어내게 된 데 따른 홀가분함도 털어놨다.

그는 “판사라는 직업은 판단하고 처벌하는 직업”이라며 “과연 이 직업을 통해 얼마나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는지, 얼마나 슬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는지, 얼마나 답답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는지 항상 자문해왔고, 그렇게 주어진 그 칼은 제게는 늘 무겁기만 했다”고 고백했다.

김영란 대법관은 끝으로 “저는 그 칼을 돌려드리고 법원 밖의 세상으로 나간다”며 “끝 너머에는 항상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30년 가까운 법관의 경험을 살려 세상에 기여하고 봉사할 수 있는 새 길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김 대법관은 ‘봉사할 수 있는 새 길’을 거론한 것처럼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기에 더욱 아름다운 퇴임이다. 그의 이런 빛나는 퇴임이 향후 대법원장이라는 더 큰 영예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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