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총 쏴 범인 사망…민사상 배상책임

대법 “형사상 무죄라도 민사책임 져야…국가 60% 책임” 기사입력:2008-02-09 17:14:41
경찰관이 체포과정에서 총을 쏴 범인이 사망한 경우, 비록 형사상으로는 무죄라도 민사상으로는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권OO(44)씨는 2001년 11월 27일 오후 11시 20분경 후배인 정OO씨와 술을 마시던 중 아내와의 결혼생활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이혼해야 하겠다는 말을 했다.

이에 정씨가 이혼을 만류했는데 권씨는 갑자기 맥주병을 깨뜨려 정씨의 목을 찔렀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정씨를 병원으로 후송하는 사이 권씨는 자신의 집으로 도망갔다.

경찰관들은 가해자가 권씨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원을 요청했으며, 때마침 권씨의 아내도 파출소에 찾아와 “남편이 집에서 흉기로 아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권씨의 집 앞에서 권씨의 친구를 만났고 상황을 물어보고 있는데, 권씨가 나오면서 “당신들 뭐야, 이 밤에 왜 왔어, 빨리 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경찰관들에게 달려들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이었다.

이 때 권씨의 아내가 흉기가 있다고 소리쳤고, 권씨는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달려들며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권씨는 지역 씨름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힘이 세고 건장한 체구인 반면 출동한 경찰관들은 몸이 왜소하거나 나이도 많아 제압하기에 역부족이어서 오히려 밀리는 상황이었다.

권씨에 밀려 넘어졌다가 정신을 차린 한 경찰관은 권씨가 동료 경찰관의 권총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공포탄을 발사하며 경고했으나, 권씨가 아랑곳하지 않고 동료 경찰관을 폭행하며 밀어붙이자 실탄을 발사했다.

총알은 권씨의 우측 흉부를 관통했고, 즉시 권씨는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간파열 등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12월 3일 사망하고 말았다.

한편 권씨는 경찰관들과 격투를 벌일 당시 바지 주머니에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권씨의 유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반면 국가는 당시 상황은 정당방위 내지 정당행위에 해당돼 위법성이 없다며 맞섰다.

1심인 창원지법 진주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윤남근 부장판사)는 2003년 11월 권씨의 아내와 3명의 자녀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권총을 쏜 경찰관으로서는 이미 동료 경찰관 등과 함께 범인과 몸싸움을 벌이다 오히려 간단히 제압 당하고, 또 흉기를 휴대한 범인과 다시 몸싸움을 시도한다는 것은 위험천만의 무모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동료 경찰관을 구출하고 만일 발생할지 모를 인명피해를 저지하기 위해 권씨의 몸통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 것은 정당한 직무집행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원고들은 항소했고, 부산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조용구 부장판사)는 2005년 12월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깨고, “국가는 망인의 아내에게 4,358만원, 자녀 3명에게 각각 2,551만원씩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그러자 국가가 상고했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도 지난 1일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관이 총기사용을 신중히 판단했다면 쏘지 않을 수 있었고, 설령 부득이 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더라도 하체 부분을 향해 쐈다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이 흉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해 권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과실이 있다”며 “비록 총을 쏜 경찰관이 형사사건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됐더라도 권씨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점에다가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측면까지 종합하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망인도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하고, 또 공포탄을 발사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경찰관을 폭행한 잘못이 있고, 이런 잘못은 사고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됐으므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6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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