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과 자녀 살해는 별개"... 법정심리학자가 본 린지 클랜시 세 자녀 살해 사건 ②

[크라임 렌즈] 법정심리학자 다이아몬드 "정신질환 진단 아닌 범행 당시 인식·통제 능력이 형사책임의 기준" 기사입력:2026-09-29 08:25:00
지난 9월 4일 린지 클랜시 재판에서 배심원 12명 가운데 11명은 클랜시에게 범행 당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쪽에 섰다. 변호인 측은 클랜시가 산후정신증을 비롯한 심각한 정신질환 때문에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을 정상적으로 판단하거나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미국 형사재판에서 배심원 평결은 만장일치여야 한다. 결국 9월 4일 재판은 유죄도 무죄도 아닌 무효심리(mistrial, 배심원 의견이 갈려 평결 없이 재판이 끝나는 것)로 마무리됐다. 같은 증거를 보고도 11명과 1명의 판단은 왜 갈렸을까.

앞선 기사에서 살펴본 쟁점이 "클랜시가 범행 당시 산후정신증 상태였는가"였다면, 두 번째 질문은 법적 책임이다. (하단 로이슈 관련 뉴스 참조 : <"산후우울증인가, 산후정신증인가"... 세 아이 목 조른 美 간호사 엄마, 배심원 11대 1로 갈렸다 ①>)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범죄에 대한 책임도 사라지는가.

답은 그렇지 않다.

임상·법정심리학자 스티븐 A. 다이아몬드(Stephen A. Diamond) 박사는 클랜시 사건을 분석하며 정신질환과 법적 책임을 구분하는 지점을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짚는다. 정신질환의 존재와 진단은 임상적 판단의 영역이지만, 그 질환 때문에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거나 통제할 능력이 없었는지를 가리는 일은 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미국 심리 전문매체 에 실린 임상·법정심리학자 스티븐 A. 다이아몬드(Stephen A. Diamond) 박사의 분석(2026)에 따르면, 지난 9월 4일 린지 클랜시 재판에서 배심원 12명 중 11명이 &quot;형사책임 없음&quot; 쪽에 섰으나 1명의 반대로 무효심리로 끝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정신질환 진단과 법적 책임은 별개이며, 매사추세츠의 '맥훌 기준'은 검찰이 피고인의 범행 당시 인식 능력과 통제 능력을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하도록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살 시도가 곧 자녀 살해에 대한 면책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망상·환각 같은 정신증 증거의 유무가 판단의 갈림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린지 클랜시 사건 법정 / 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미국 심리 전문매체 에 실린 임상·법정심리학자 스티븐 A. 다이아몬드(Stephen A. Diamond) 박사의 분석(2026)에 따르면, 지난 9월 4일 린지 클랜시 재판에서 배심원 12명 중 11명이 "형사책임 없음" 쪽에 섰으나 1명의 반대로 무효심리로 끝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정신질환 진단과 법적 책임은 별개이며, 매사추세츠의 '맥훌 기준'은 검찰이 피고인의 범행 당시 인식 능력과 통제 능력을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하도록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살 시도가 곧 자녀 살해에 대한 면책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망상·환각 같은 정신증 증거의 유무가 판단의 갈림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린지 클랜시 사건 법정 / 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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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심신상실 항변', 정신질환 진단만으로는 인정 안 돼

미국에서 흔히 'insanity defense'라고 부르는 심신상실 항변은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판단의 기준은 범행 당시의 정신상태다.

미국의 여러 주는 서로 다른 법적 기준을 적용한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일부 주는 1843년 영국 판례에서 유래한 '맥노튼 규칙(M'Naghten Rule)'을 토대로 형사책임을 판단한다.

맥노튼 규칙은 주로 인지능력, 즉 피고인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범행 당시 피고인이 정신질환 때문에 자신이 하는 행위의 본질과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몰라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없었다면 법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접근이다.

다이아몬드 박사가 활동하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심신상실 항변을 제기한 피고인 측이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the evidence)' 기준에 따라 심신상실을 입증해야 한다. 증거의 우월은 '합리적 의심을 넘어선 입증(beyond a reasonable doubt)'보다 낮은 증명 기준이다. 쉽게 말해 범행 당시 피고인이 법적으로 심신상실 상태였을 가능성이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보다 조금이라도 높다는 점을 보여주면 된다.

피고인 측이 이 기준을 충족하면 '심신상실로 인한 무죄(Not Guilty by Reason of Insanity·NGRI)'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여기서 '심신상실(insanity)'은 의학적 진단명이 아니다. 형사책임을 판단하기 위한 법률적 개념이다.

■ 매사추세츠는 '형사책임능력 결여(LCR)', 인식 능력에 통제 능력까지 판단

클랜시 사건이 발생한 매사추세츠주는 조금 다르다.

매사추세츠에서는 통상적인 'insanity defense' 대신 '형사책임능력 결여(lack of criminal responsibility·LCR)'라는 표현을 쓴다. 1967년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의 Commonwealth v. McHoul 판결에서 확립된 이른바 '맥훌 기준(McHoul Standard)'을 적용한다.

맥훌 기준은 크게 두 가지 능력을 본다.

피고인이 정신질환이나 정신적 결함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범죄이거나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식할 실질적 능력이 없었는지, 또는 자신의 행동을 법의 요구에 맞게 통제할 실질적 능력이 없었는지다. 둘 가운데 하나라도 정신질환이나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결여돼 있었다면 형사책임능력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맥노튼 규칙이 주로 "옳고 그름을 알았는가"라는 인지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맥훌 기준은 여기에 행동을 법에 맞게 통제할 능력까지 포함한다.

■ 재판능력과 형사책임능력, "지금 재판받을 수 있나"와 "그때 책임질 수 있었나"의 차이

형사책임능력 결여는 '재판능력(competency to stand trial)'과도 다르다.

재판능력은 피고인이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재판을 이해하고 변호인과 의사소통하며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본다. 반면 형사책임능력은 범죄가 발생한 바로 그 순간의 정신상태를 들여다본다.

범죄가 수년 전에 발생했다면 법정심리평가자는 수년 전 피고인의 정신상태를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 범행 전 어떤 행동을 했는지, 당시 무슨 말을 했는지, 범행 직후에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진료기록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지 등을 종합한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심신상실 사건의 법정심리평가에서 범행 직전·범행 당시·범행 직후의 정신상태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클랜시 재판이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매사추세츠에선 검찰이 '책임 있었다'를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매사추세츠에서는 형사책임 문제가 적절하게 제기되면 피고인이 자신에게 책임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이 피고인에게 범행 당시 형사책임능력이 있었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을 넘어 입증해야 한다.

매사추세츠 공식 배심원 지침은 검찰이 범죄의 구성요건과 함께 피고인이 범행 당시 형사책임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 역시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배심원이 형사책임능력에 합리적 의심을 품는다면 '형사책임능력 결여를 이유로 한 무죄' 판단을 내려야 한다.

매사추세츠법에서 말하는 '정신질환 또는 정신적 결함(mental disease or defect)'이 반드시 특정 정신의학적 진단명과 일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검찰은 "클랜시가 산후정신증 진단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범행 당시 클랜시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식할 실질적 능력이 있었고, 자신의 행동을 법의 요구에 맞게 통제할 실질적 능력도 있었다는 점을 배심원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입증책임의 방향이 다르다는 점에서 매사추세츠의 기준이 캘리포니아보다 검찰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운다고 설명한다. 검찰은 피고인이 범행 당시 형사책임을 부정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손상 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것까지 합리적 의심을 넘어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클랜시 재판의 11대 1이라는 결과는 맥훌 기준을 실제 법정에서 적용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 '편집증적이었다'는 어머니의 말, 임상적 편집증과는 다른 문제

검찰은 재판에서 클랜시의 행동이 계획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변호인 측은 산후정신증과 양극성장애 때문에 범행 당시 클랜시가 현실을 정상적으로 판단하거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배심원이 판단해야 했던 것은 클랜시가 정신적으로 고통받았는지가 아니었다. 클랜시의 정신상태가 법적으로 형사책임을 부정할 정도였는가였다.

클랜시가 범행 전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은 정황은 적지 않았다. 심한 불면과 우울, 불안을 호소하며 여러 임상가에게 진료를 받았고 정신과 입원치료도 받았다. 여러 종류의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기도 했다.

클랜시의 어머니는 딸이 당시 '편집증적(paranoid)'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박사는 어머니의 표현을 곧바로 임상적 의미의 편집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임상적 의미의 편집증은 피해망상이나 박해망상처럼 고정된 비합리적 믿음을 포함한다.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약이 내 정신을 망가뜨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는 사실만으로 정신증적 편집증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대로 클랜시가 실제로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환청(특정 행동을 하라고 지시하는 환청)을 듣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사고전파(자신의 생각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고 믿는 증상)를 경험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이런 진술이 사실이라면 정신증 상태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쟁점은 진단명이 아니라 범행 당시 클랜시의 정신기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지로 돌아간다.

■ "자살과 자녀 살해는 별개의 문제", 다이아몬드 박사가 그은 선

다이아몬드 박사는 공개된 자료를 보면 클랜시가 범행 전후 심각한 우울증상을 겪었다는 점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본다. 범행 직후 손목과 목을 베고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행동 역시 실제 자살 시도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박사는 여기서 선을 긋는다. 자살과 자녀 살해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고통받았다는 사실이 곧바로 세 자녀를 살해한 행위에 형사책임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망상이나 환각 같은 정신증적 증상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면, 아무리 우울과 불안이 심각했더라도 현실검증력(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는 능력)과 판단력이 형사책임을 잃을 정도로 손상됐다고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는 견해를 밝힌다.

다만 위 판단은 다이아몬드 박사 개인의 법정심리학적 평가다. 실제 법적 판단은 배심원의 몫이다. 클랜시 사건에서는 12명 가운데 11명이 형사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쪽에 섰고, 한 명이 끝까지 반대했다. 한 표 때문에 평결은 성립하지 않았다.

그래서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클랜시를 다시 재판에 세운다면 새로운 배심원단 역시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정신질환은 어디까지 범죄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바꿀 수 있는가.

▶ 원문 기사 출처
"Criminal Responsibility in Massachusetts Criminal Cases." <SERPA Law Office>
"Postpartum Psychosis and Legal Accountability." Stephen A. Diamond, Ph.D. 2026.09.05. <Psychology Today>.
"Evil Deeds and Dangerous States of Mind." Stephen A. Diamond, Ph.D. 2026.09.06. <Psychology Today>.
"The Key to the Lindsay Clancy Case: Defining Psychosis." Stephen A. Diamond, Ph.D. 2026.09.12. <Psychology Today>.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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