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살인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고령화 심화 과정에서 '개호살인(介護殺人)' 문제를 일찍부터 인지해 논의를 축적해왔고, 미국에서도 가족 내 간병살인(Family Caregiver Homicides, FCH) 관련 연구가 진행돼 왔다. 대만 역시 장기요양(LTC) 제도 도입과 함께 가족 돌봄 과정에서 발생한 살해·자살 사건을 분석해왔다.
반면 국내에서는 '간병살인'의 개념 정립과 공식 통계 체계가 미흡하고, 연구도 사례 중심의 질적 접근에 머물러 실증적·체계적 분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런 가운데 김성희(치안정책연구소) 외 연구진은 '간병살인의 위험요인 및 유형별 예측모형 탐색: 부부·부자 간병살인 유형을 중심으로'(『치안정책연구』)에서 간병살인의 특성과 핵심 위험요인을 판결문 기반으로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유형별 예측 가능성을 탐색했다.

김성희 치안정책연구소 연구원 외 연구진(2025)의 연구에 따르면 간병살인은 단순한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관계 유형에 따라 촉발 요인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부부 간병살인은 수면 부족, 부자 간병살인은 돌봄효능감 저하가 핵심 위험요인"이라며 "치매안심센터와 보건소 등 1차 보건기관에서 고위험군을 조기 선별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 '간병살인' 법적 공백... 형법상 별도 규정은 없어
현행 형법은 간병 상황에서 발생한 살인을 일반살인·존속살인·촉탁·승낙살인 등으로 구분할 뿐, '간병살인' 자체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다. 간병 과정에서 폭행·학대·유기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존속학대치사, 존속폭행치사, 존속상해치사 등으로 처벌된다.
연구진은 간병살인의 공통 특성으로 '친족 간 간병 과정에서 발생한 살인'이라는 점을 들었다. 김성희(2024)는 간병살인을 "가족을 간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체적·정신적·경제적 어려움과 스트레스로 피간병인을 살해하거나, 학대(폭행·상해·유기·자살 교사·방조)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로 정의했다. 직접 살해뿐 아니라 간병 부담에 기인한 학대·방조까지 포함해 다층적 양상을 포괄한다는 취지다.
■ 돌봄 구조, 범행 동기, 시점... '3축' 유형화
간병살인은 돌봄 관계의 구조, 범행 동기, 범행 시점이라는 세 축에서 유형화할 수 있다.
돌봄 관계 구조를 기준으로 하면 노노(老老) 간병살인, 노자(老子) 간병살인(노인이 자녀를 또는 자녀가 노인을 간병), 역간병살인(주간병자와 피간병자 관계 역전)으로 나뉜다. 범행 동기를 기준으로 하면 동반자살형, 충동·분노형, 자포자기형으로 구분된다. 범행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단기 간병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우발형'과 장기간 누적된 스트레스가 탈진으로 이어져 발생한 '누적형'으로 나뉜다.
■ "단일 요인 아니다"... 남성·우울·수면부족이 핵심 축
간병살인은 단일 요인보다 장기간 돌봄 과정에서 피로·고립감·죄책감·분노·절망 등이 누적돼 촉발되는 경향이 크다. 기존 연구들은 가해자 성별, 정신·신체 상태(우울·수면 부족), 돌봄효능감, 간병기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위험요인들이 관계 유형에 따라 다르게 결합한다고 분석해왔다.
가해자 성별은 중요한 영향 요인으로 나타났고, 여러 연구에서 남성 가해자 비중이 높으며 비교적 직접적·폭력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이 보고됐다. 장기 간병으로 인한 우울감과 수면 부족은 충동성과 정서 조절 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돌봄 수행에 대한 자기효능감(돌봄효능감) 저하 역시 통제력 상실과 좌절·공격성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판결문 143건 분석... 부자 60.8%·부부 39.2%
연구진은 2007년부터 2024년 12월까지 전국 형사법원에서 유죄로 최종 확정된 간병살인 사건 판결문을 수집해 분석했다. 1심부터 3심까지 실형 또는 집행유예가 확정된 살해·치사 사건(살인기수, 폭행치사, 상해치사, 학대치사)을 대상으로 했으며, 고의적 살해뿐 아니라 간병 부담에서 비롯된 폭행·상해·유기·자살 방조로 인한 사망까지 포함했다. 또한 가해자-피해자 관계에 따라 부부 간병살인과 부모-자녀 간(부자) 간병살인으로 유형화했다.
기초분석 결과, 부자 간병살인이 87건(60.8%)으로 부부 간병살인 56건(39.2%)보다 많았다. 죄명은 살인 49건(34.3%)이 가장 많았고, 존속살인 40건(28.0%), 존속상해치사 26건(18.2%), 존속유기치사 12건(8.4%) 순이었다. 양형은 징역형 113건(79.0%), 집행유예 30건(21.0%)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는 남성 108명(75.5%)이 여성 35명(24.5%)보다 많았다. 피해자는 여성 91명(63.6%), 남성 52명(36.4%)으로 여성 비율이 높았다.
■ 부부 간병살인은 "수면부족", 부자 간병살인은 "돌봄효능감 저하" 핵심
유형별 비교에서 부부 간병살인은 평균 간병기간이 더 길게 나타났고, 수면 부족과의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높게 보고됐다. 반면 부자 간병살인은 남성 가해자 비율과 돌봄효능감 저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세부 분석에서는 수면 부족을 호소할수록 부부 간병살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고, 돌봄효능감 저하는 부자 간병살인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제시됐다. 간병기간은 짧을수록 부자 간병살인 가능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분석됐다.
분석 결과는 선행연구에서 지적된 경향과 맥을 같이한다. 부부 간병살인은 장기 간병과 남성 배우자의 간병, 전통적 성 역할 기대와 간병 역량 부족 등 구조적 요인이, 부자 간병살인은 준비되지 않은 '독박 간병'이 역할 갈등과 박탈감, 정서적 압박을 키우며 돌봄효능감 저하와 우울 누적으로 이어지는 특징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간병살인이 단순한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관계 유형에 따라 촉발 요인이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결론지었다.
■ 정책 제언: "치매안심센터·보건소에서 조기 선별 필요"
연구진은 간병살인이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장기적·구조적 스트레스 누적의 결과라는 점을 전제로, 위험요인을 조기에 선별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지역 치매안심센터와 보건소 등 1차 보건기관에 표준화된 '스트레스–돌봄효능감–수면장애' 평가 도구를 도입하고, 전자건강기록(EHR)과 연동해 고위험군을 조기에 정신건강 전문서비스로 연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조기 지원이 이뤄질 경우 심리적 탈진이 범행으로 비화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1차 예방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아울러 가족 간병인의 경제적·시간적 부담을 구조적으로 완화할 제도적 기반 마련도 강조했다. 연구진은 지자체별 통합돌봄 프로그램(예: 경기도 360° 모델)을 국가 표준 모형으로 제도화하고, 국가 예산으로 지역 간 서비스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가족 내 간병 부담을 사회적 인프라로 분산시키는 장기 안전망 구축이 간병살인 예방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연구논문
김성희·김연주·윤세이(2025). 간병살인의 위험요인 및 유형별 예측모형 탐색: 부부·부자 간병살인 유형을 중심으로. 치안정책연구, 39(3), 283-326.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