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복합적인 건강 문제다. 그러나 형사사법 시스템은 중독자를 처벌 대상으로 간주하며 엄중한 법 집행에 의존한다. 이로 인해 중독자들은 치료 기회를 잃고, 재범과 과다복용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특히 캐나다와 미국에서 급증한 펜타닐 관련 사망은 오피오이드 위기가 공중보건 문제로 다뤄져야 함을 보여준다.
형사사법 시스템은 중독자를 구금하고, 엄격한 보석 및 보호관찰 조건을 부과하며,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중독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며, 오히려 개인과 지역사회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 구금 중 강제 해독은 건강 합병증을 유발하고, 석방 후 과다복용 위험을 높인다. 또한, 원주민과 저소득층은 불균형적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으며 사회적 낙인이 강화된다.
헤일리 흐리막 (Haley Hrymak, 달하우지 대학교 로스쿨)은 에 게재된 논문 ‘오피오이드 위기, 범죄 위기가 아닌 건강 위기: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시사점(The Opioid Crisis as Health Crisis, Not Criminal Crisis: Implications for the Criminal Justice System)’을 통해 오피오이드 위기의 형사화가 초래한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중보건 중심 접근을 제안한다. 연구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BC)를 중심으로 문헌 검토, 판례 분석, 그리고 변호사와 공익 전문가 등 11명의 인터뷰를 통해 중독 처벌의 해악을 분석한다.

오피오이드 위기는 범죄가 아닌 공중보건 문제로 다뤄져야 하며, 형사사법 시스템의 처벌 중심 접근은 중독자의 재활을 저해하고 사회적 해악을 낳는다. 캐나다 연구는 치료와 지역사회 지원을 강화하는 개혁을 통해 재범률과 과다복용 사망을 줄일 것을 제안한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디자인팀
이미지 확대보기■캐나다 BC주 사례 분석… “처벌은 중독 해결책 아냐”
Hrymak은 BC주 펜타닐 밀매 관련 판례 14건을 분석하며, 피고인의 86%(12건)가 자신의 중독을 유지하기 위해 밀매에 가담했음을 밝힌다. 그러나 법원은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평균 3~7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며 중독의 의학적·심리적 특성을 간과한다. 이는 중독자를 재활로 이끌기보다 구금과 낙인으로 내몬다.
연구는 형사사법 시스템이 중독자를 처벌 대상으로 간주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엄격한 보석 조건과 보호관찰은 중독자의 재활을 지원하기보다 조건 위반을 유발해 재구금으로 이어진다. 인터뷰에 참여한 공익 변호사와 보호관찰관은 “중독자를 위한 치료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구금 환경은 건강을 악화시킨다”고 증언한다. 특히 원주민 중독자는 불균형적으로 높은 수감률을 보이며, 이는 형사사법 시스템 내 인종적 편견을 시사한다.
■공중보건 위기로의 전환… 4가지 개혁 제안
흐리막 교수는 오피오이드 위기를 범죄가 아닌 공중보건 문제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4가지 정책적 개혁을 제안한다:
1. 인식 전환: 판사, 검사, 경찰 등 형사사법 관계자들이 중독을 건강 문제로 이해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는 중독자를 처벌 대상이 아닌 치료 대상으로 간주하는 첫걸음이다.
2. 지역사회 지원 강화: 전환 프로그램, 주거 지원, 직업 훈련 등 지역사회 기반 재활 프로그램을 확대해 중독자의 사회 재통합을 촉진해야 한다.
3. 구금 중 해악 감소: 구금된 중독자에게 날록손, 청결한 주사기, 오피오이드 대체 요법(메타돈 등)을 제공해 과다복용과 건강 악화를 예방해야 한다.
4. 교육과 훈련: 중독자의 경험을 반영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형사사법 관계자의 편견을 줄이고, 공감적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연구는 이러한 개혁이 중독자의 재범률을 낮추고, 과다복용 사망을 줄이며,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1980년대 크랙 코카인 위기 당시 처벌 중심 접근이 실패했던 역사적 교훈을 반영한다.
■처벌 중심 접근의 악순환… 공중보건으로의 전환 시급
오피오이드 위기의 형사화는 중독자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 해를 끼친다. 구금은 중독자의 치료 접근성을 제한하고, 석방 후 과다복용 위험을 높인다. 또한, 엄중한 처벌은 원주민과 소수 집단에 불균형적 피해를 주며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Hrymak은 “형사사법 시스템은 중독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며, 공중보건 중심 접근이 시급하다고 경고한다.
논문은 캐나다 BC주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 시사점은 미국과 다른 지역에도 적용 가능하다. 특히 펜타닐 위기가 심각한 미국에서는 처벌 중심 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연구는 형사사법 시스템이 공중보건 목표를 지원하도록 재구성될 때, 중독자와 사회 모두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 기사 연구논문
Hrymak, H. (2020). The Opioid Crisis as Health Crisis, Not Criminal Crisis: Implications for the Criminal Justice System. Dalhousie Law Journal, 43(1), 127–162.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