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구 판사는 “여호와의 증인 종파의 독실한 신자로서 극단적 비폭력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사람에게 군대 입영을 형벌로써 무조건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하는 입영 등을 하지 않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17일 민변(회장 정연순)은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은 감옥행을 이어가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고통에 눈 감지 않고, 현행 병역법과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의 조화를 꾀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 서울남부지원을 시작으로 작년에도 광주지방법원과 수원지방법원에서 잇달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이 선고됐다.
민변은 “특히 이번 부천지원 판결은 군인들이 복무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국방의무를 이행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국방의 의무는 군대에 입대하는 사람들만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각자의 가정ㆍ사회 내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각하며 소극적으로는 국가의 안정보장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는 방법으로 모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라고 판시해, 여성, 장애인, 노인, 청소년, 군면제자, 군전역자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고 봤다”고 전했다.
민변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그 심각성으로 인해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사안이다. 2013년 현재 투옥된 전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95%가 한국에 투옥돼 있었고, 지금도 크게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또 “국제사회는 한국 정도의 규모와 정치ㆍ경제적 수준을 가진 나라가 매년 5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감옥에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며 “지난해 10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대한민국 4차 국가보고서 심의 결과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병역거부자 전원을 즉시 석방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환기시켰다.
이어 “국제기구의 권고로서는 유례없는 수준의 표현이었다”고 의미를 뒀다.
민변은 “이러한 사정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와 국회는 ‘국민공감대’라는 핑계를 내세우며 이 문제가 공론화된 지 16년 가까이 지나도록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헌법재판소가 화답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작년 5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제도의 기회를 주지 않고 오직 형사처벌만을 강요하는 현재의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위헌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공개변론을 열었다.
그러나 공개변론 이후 1년이 지나도록 결정을 내리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민변은 “헌재는 2004년, 2011년 위 병역법 조항에 대해 모두 합헌 결정을 하면서 ‘소수자의 인권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기구로서의 위상에 부합하지 못했지만, 이번 공개변론 이후 이어지고 있는 하급심의 무죄판결은 헌법재판소가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밝혔다.
민변은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라는 명성에 걸맞게 빠른 시일 내에 위 병역법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라는 선택의 기회도 없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권침해적 상황을 종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