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우울증 자살’ 무조건 보험금 받는 것 아냐”

“우울증 있어도 망인이 자유의지로 자살했다면 보험금 받지 못해” 기사입력:2011-05-11 22:29:39
[로이슈=신종철 기자] 우울증으로 자살했더라도, 자살 당시의 행정과 유서의 내용 등을 볼 때 망인이 ‘자유의지’로 자살을 택한 정황이 있다면 유족은 공제금(유족보상금)지급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특히 이번 판결은 자살을 두고 1심에서는 ‘공제금지급 면책사유’로 판단했으나, 항소심에서는 ‘공제금지급 면책 예외사유’로 판결을 뒤집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됐었다.

강원도의 한 보건소에서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던 A(사망 당시 33세)씨는 2007년 6월 속초시 교동 자신의 아파트 인근 야산에서 농약을 마시고 신음하고 있는 것이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다음날 숨졌다.

A씨는 사망 당시 군청소속 직원이었고 군청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농업협동조합중앙회에 단체공제보험을 들어놓은 상태였다. 이 공제계약은 질병 또는 재해로 사망했을 때 1억 원을 지급받게 돼 있었다.

이에 A씨의 부인 K씨 등 유족들은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농협측은 “가입자가 고의로 자신의 해친 경우(자살)에는 공제금을 지급하지 안 돼, 정신질환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다”는 약관 규정을 근거로 “A씨가 고의로 자살한 것으로써 공제금지급 면책사유에 해당한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유족들은 “망인은 의료기술직으로서 각종 검사 및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고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특히 동료 직원이 뇌출혈로 병가를 내는 바람에 오랫동안 그의 업무까지 수행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됐는데, 망인은 이런 공무수행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발병ㆍ악화돼 정신적인 억지력 및 행동선별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망인의 사고는 정실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 사건 공제계약 약관상의 공제금지급 면책사유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실제로 과거 정신병 등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없던 A씨는 숨지기 전날 병원에서 불안, 의욕저하,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해 ‘우울성 에피소드(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물처방을 받았다.

반면 농협 측은 “망인이 우울증을 앓기는 했으나 가족에게 유서를 써 놓고 미리 준비한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점 등에 비춰 자유로운 이성적 판단이 가능했다고 보인다”며 “즉 우울증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공제계약 약관상의 공제금지급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맞섰다.

◈ 1심 “망인의 자살은 공제금지급 면책사유인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1심인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1단독 정수진 판사는 2009년 3월 망인 A씨의 부인 K씨 등 유족들이 농업협동중앙회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정 판사는 “망인은 미리 준비한 농약을 야산에서 마셔 자살했고, 처형 등에게 남긴 유서에는 ‘가족들을 잘 부탁한다’, 아내에게 남긴 유서에는 ‘미안하다’는 내용과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내용을 포함해 주로 개인적인 감정이 기재돼 있었던 사실 등을 종합해 보면, 망인이 자살할 당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기보다는 자기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이 사고는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해친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공제금지급 면책사유인 ‘고의로 자신의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며 패소 이유를 설명했다.

◈ 항소심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공제금지급 면책 예외사유”

이에 K씨가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17민사부(재판장 곽종훈 부장판사)는 2009년 11월 “공농협은 사망공제금 1억 원을 망인의 상속인들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깨고, K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먼저 망인이 자살하기 전에 병원을 찾아가 불안, 의욕저하 및 2007년부터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을 주된 병증으로 호소했고, 망인을 진료한 의사는 ‘망인의 우울병의 증상이 심했으며, 망인의 자살과 우울병 사이에 인과관계는 상당히 높을 것으로 추정되고, 우울병 외에 자살의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다’는 의학적 소견을 밝힌 점에 주목했다.

이에 재판부는 “망인은 검사결과 격정적 우울병의 경우에 나타나는 신경과민, 숨이 막히고 질식할 것 같은 느낌,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보다 체중이 7kg 가량 줄었고, 자살 당시 자살을 결심할 만한 직장 내의 문제나 가정적 어려움 등의 사유는 없었던 사실 등에 비춰 보면, 망인은 심한 우울증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했다고 봄이 상당해, 공제금지급 면책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대법 “유서 등을 보면 정신질환으로 자살했다고 보기 어려워”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우울증으로 자살한 보건소 직원 A씨의 유가족 3명이 농업협동조합중앙회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 상고심(2009다97772)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망인은 평소 꼼꼼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1남1녀를 두고 있었고, 자살당시 가정이나 직장에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으며, 2007년도에 연가 3일을 사용한 것 이외에는 모두 정상근무를 해왔고, 종전에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 사실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관계가 이렇다면, 망인이 자살 당일 우울성 에피소드 진단을 받기는 했으나, 그 발병 시기가 그다지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망인의 나이와 평소 성격, 가정환경, 자살 당일 행적, 자살하기 전에 남긴 유서의 내용과 그로부터 짐작할 수 있는 심리상태, 자살행위의 시기와 장소, 방법 등에 비춰보면 망인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럼에도 원심이 망인의 자살이 우울증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봐, 공제계약의 면책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보험약관상의 면책사유에 관해 법리를 오해했거나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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