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국회의원을 동물에 빗대어 풍자했다가 모욕 혐의로 기소됐던 방송인 노정열(40) 씨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벌금 50만 원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선고유예’ 결정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판사가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혐의가 비교적 가벼운 범죄인에게 형의 선고를 미루고, 일정기간 동안 아무런 범죄 없이 지나면 선고 자체를 없애 주는 제도.
◈ 무슨 일 있어나?
사건은 이렇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작년 3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각급 학교 교원의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가입현황 실명자료’를 제출받아 인터넷을 통해 일반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및 그 소속 교사들은 조 의원을 상대로 자료 공개금지가처분신청을 냈고, 서울남부지법 제51민사부(재판장 양재영 부장판사)는 작년 4월 ‘이 자료를 인터넷에 공시하거나, 언론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며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조 의원은 작년 4월 19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 자료를 게시해 공개했고, 전교조와 그 소속 교사들은 조 의원을 상대로 가처분결정에 대한 간접강제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법 제51민사부(재판장 양재영 부장판사)는 4월 27일 “만약 조 의원이 자료 공개금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신청인들에게 의무위반이 있은 날부터 1일 3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조전혁 의원은 “법원의 이 가처분 결정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제한하고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것으로, 전혀 존중할 가치가 없는 월권이자 위법으로 무효”라고 말하는 등 법원의 결정을 따를 의사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며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계속 공개했다.
그러다 하루 3000만 원의 간접강제결정 지급의무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자료 공개를 중단하면서도 끝까지 싸워보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5월 4일 자정에서야 홈페이지에서 이 자료를 삭제했다.
맨 우측이 시사풍자 개그맨이자 방송인 노정열씨
◈ 노정열 “조전혁 얼굴 누렇게 떴다…개나 소는 훼손될 명예도 없다”
그런데 시사풍자 개그맨이자 방송인인 노정열 씨는 작년 5월 16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교조가 주최한 ‘전교조 창립 21주년 기념 전국교사대회’에 참석해 “요즘 조전혁 의원의 별명이 초저녁이라는 말도 있고, 애저녁이라는 말도 있다. 애저녁에 글러 먹어가지고”, “조 의원이 발악을 했는데 뜨기는 떴습니다. 얼굴이 누렇게 떴다”라고 말했다.
이에 사회자가 “명예훼손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자, 노씨는 “걱정 안 해도 된다. 명예훼손이라는 것은 훼손될 명예가 있는 사람에게 명예훼손이 되는 거지, 훼손될 명예가 없는 개나 짐승 소한테는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안 된다”고 말해, 당시 현장에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에 불쾌한 조 의원은 “개그맨 노정열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저에 대한 온갖 비아냥을 했다”며 “노정열이라는 개그맨이 왜 저를 ‘짐승’에까지 비유하며 증오와 분노를 토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극도의 증오를 토할 만큼의 악연을 맺은 기억이 없다”고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고, 지난해 5월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 1심 “벌금 50만원…공인으로서 수인한도 넘는 모욕”
1심인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재욱 판사는 지난해 12월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을 동물에 비유한 발언을 한 혐의(모욕)로 기소된 방송인 노정열 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피해자를 개나 소 등 동물에 비유해 비하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피해자의 정치적 행태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나 풍자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수준의 표현까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은 것으로서 보호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피해자에 대한 경멸적 표현이 담긴 풍자적 부분에 덧붙여 피해자를 동물로 비하하는 부분이 연이어진 피고인의 발언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일부 풍자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이를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그러면서 “비록 피해자가 국회의원의 신분을 가진 공인이고 법규에 위반한 정치적 행태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더라도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가지는 피해자 고유의 인격권은 이를 보호받음이 마땅하다”며 “피고인의 발언은 피해자가 공인으로서 수인해야 할 한도를 넘어 모욕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 항소심 “국회의원의 언행이나 품성에 대한 비판의 자유 보장돼야”
그러자 노씨는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반면 검사는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각각 항소했으나, 서울남부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성구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벌금 50만 원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모욕죄의 보호법익이 개인적인 법익이기는 하나, 피해자가 공적인 인물, 특히 선거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인 경우에는 그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인 평가가 형성되는 과정이 통제돼서는 안 되고, 그 전제로서 정책적인 비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언행이나 품성 등에 대한 비판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사개그를 전문으로 하는 개그맨으로서 전교조가 주최한 집회에 참석해 사회적 관심이 쏠린 조 의원의 행위를 풍자하던 중 일부 모욕적인 발언을 한 점과 동종 전과가 없는 점, 범행의 동기 및 경위,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원심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조전혁 의원이 법원의 가처분결정에 반해 사건 자료를 공개했을 뿐 아니라, 간접강제결정까지 받았음에도 수일간 자료를 삭제하지 않는 등 법원 결정을 무시하는 행동을 해온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정열 씨는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94년 제3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잠시 관료의 길을 걷다가 공무원 생활을 접고, 1996년 돌연 MBC공채 개그맨 7기에 합격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각종 프로그램에서 시사풍자개그를 선보였고, 현재 노씨는 CBS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풍자쇼 <뉴스야 놀자>를 6년 동안 진행해 오며 관료주의에 대해 신랄한 풍자를 가하는 대표적인 시사풍자 개그맨으로 유명하다.
‘조전혁 의원’ 동물에 빗대 풍자한 노정열 선고유예 왜?
항소심 “모욕 혐의 벌금 50만원 선고유예…정치인 비판 자유 보장돼야” 기사입력:2011-04-22 17: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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