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원 무단 ‘TV토론’ 출연, 직위해제 사유 안 돼

대법 “‘근무태도가 극히 불량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기사입력:2011-02-07 13:59:06
[로이슈=신종철 기자] 방송에 출연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논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에게 ‘근무태도가 불성실하다’며 내려진 직위해제 처분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연구원 소속 선임연구위원으로 근무하던 A(54)씨는 2005년 12월 원장의 출연 자제 요청에도 KBS의 ‘생방송 심야토론’에 출연해 노무현 정부의 ‘8ㆍ31 부동산대책’에 반대하는 논리를 주장했다.

방송 이후 원장은 A씨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으로 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등의 이유로 청와대 및 재정경제부 등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한국조세연구원은 국가의 조세정책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이에 조세연구원은 2006년 1월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만장일치로 A씨에 대해 ‘근무태도 불성실(규정위반 및 지시불이행)’을 이유로 ‘3개월간의 직위해제’ 및 ‘3개월간의 연구조정실 대기발령’과 동시에 ‘1년간 대외활동 금지’를 결의했다.

직위해제 처분은 2개월 후인 3월 ‘직위해제를 면한다’는 인사발령에 의해 효력을 상실했지만, A씨는 직위해제 기간 동안 연봉 월액의 38%만을 지급받았고, 그 외에 가족수당, 학비보조금 등이 감액 또는 삭감됐으며, 대외활동금지처분으로 인해 성과급이 감액됐다.

그러자 A씨는 직위해제 처분은 무효이며, 이 기간 받지 못한 급여 등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인 서울동부지법 제12민사부(재판장 노만경 부장판사)는 2008년 9월 A씨가 한국조세연구원을 상대로 낸 ‘직위해제 등 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직위해제는 무효라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국조세연구원은 예산의 80% 이상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선임연구원인 원고가 TV 생방송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부정책과 반대되는 견해를 대외적으로 표명하는 경우 그 견해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원고 개인의 견해가 아닌 한국조세연구원의 입장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어 조세제도, 조세행정과 관련된 사항을 조사ㆍ연구ㆍ분석함으로써 국가의 조세정책 수립을 지원하고 국민 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설립 목적에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가 원장으로부터 거듭되는 지시를 받고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은 한국조세연구원의 기관운영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해당한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박사급 연구위원인 원고의 직책과 역할을 고려해 보더라도 ‘근무태도가 극히 불량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직위해제의 인사처분을 한 것은 인사권자에게 인정되는 상당한 재량 범위 내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그러자 A씨는 “설령 원장의 지시를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방송에 출연한 것이 근무태도가 극히 불성실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직위해제가 정부당국의 외압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인사권 남용에 해당해 무효”라며 항소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김상철 부장판사)는 지난해 1월 ‘직위해제 처분 자체는 직위해제 면제라는 인사발령으로 효력을 상실해 무효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면서도 ‘직위해제 처분은 근거가 부족해 무효’라며 못 받은 급여 487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직위해제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방송에 출연한 것이 근무태도가 극히 불성실한 경우에 해당해야 하는데, 한국조세연구원의 연구위원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금지돼 있지는 않은 점, 원고의 방송 출연에 대해 원장이 단지 출연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을 뿐 명시적인 출연 금지 지시를 한 것은 아닌 점, 근무태도의 성실ㆍ불성실 여부에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를 감안하면, 원고의 근무태도를 비난할 수 있어도 근무태도가 극히 불성실한 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직위해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어 “따라서 원고에게 직위해제로 인해 원고가 지급받지 못한 급여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외활동금지조치에 대해서는 “연구위원의 대외활동과 관련해 원장이 행사하는 포괄적인 인사권에 속하므로, 원고가 원장의 출연 자제 요청에도 방송에 출연해 물의를 빚게 되자 향후 일정기간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 1년간 대외활동금지 조치를 한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제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한 A(54)씨가 연구원을 상대로 낸 직위해제 등 무효 확인 청구소송 상고심(2010다24541)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장의 방송 출연 자제 요청을 어기고 방송에 출연한 원고의 근무태도를 비난할 수 있어도, 인사관리규정상 직위해제 사유로서 ‘근무태도가 극히 불성실한 자’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 직위해제는 인정할 수 없어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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