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외손녀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재혼하려는 딸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외손녀를 친양자로 입양할 수 없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친양자 입양의 주된 동기가 외손녀의 복리가 아닌 친딸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손자를 친양자로 입양할 것을 구하는 신청이 잇달아 제기돼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어 왔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러한 친양자 입양의 허용 여부에 관한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어서 향후 유사한 사건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도 “이번 판결은 친양자 입양에 있어 무엇보다도 입양되는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자녀의 복리가 아닌 생모 기타의 자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밝힌 것”이라고 판결 의의를 강조했다.
◈ 현재 외조부모를 엄마와 아빠로 알고, 생모를 언니로 알아
울산에 사는 L(57)씨 부부는 딸이 2006년 5월 사실혼 관계에 있던 A씨와 사이에 외손녀를 낳았는데, 한 달 뒤 헤어지게 되자 외손녀를 자신들이 키워왔다. A씨는 새로운 가정을 꾸린 후 딸과 전혀 교류가 없었다.
출생 직후부터 외가에서 자란 외손녀는 외할아버지를 ‘아빠’로, 외할머니를 ‘엄마’로 알고 그렇게 불렀고, 생모에게는 자신의 언니로 알고 ‘언니’로 불러왔다.
L씨 부부는 재혼 등 딸의 인생을 생각할 때 외손녀를 입양시키지 않을 수 없는데, 제3자보다는 자신들이 양부모가 되는 것이 외손녀의 복리에 도움이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며 친양자 입양 신청을 했다.
◈ 1심 “진실을 알려주는 게 더 크고 바람직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1심인 울산지법 가사2단독 조인영 판사는 지난해 7월 L씨 부부가 외손녀를 친양자로 입양시켜 달라는 심판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판사는 판결문에서 먼저 “현재 딸은 특별한 경제적 능력이 없고, A씨도 딸에 대한 양육 의지가 없으며, 외손녀는 청구인들에게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친양자 입양은 양친의 양육능력뿐만 아니라 친양자로 될 자의 복리를 위해 적합한 경우에만 인정돼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청구인들의 딸이 향후 보다 쉽게 혼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외손녀가 아닌 딸의 복리가 친양자 입양의 주된 동기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만일 청구인들이 외손녀를 친양자로 입양한다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부모가 되고, 친모가 자매로 되는 등 가족질서에 중대한 혼동이 초래될 뿐만 아니라 공서양속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 “청구인들이 진정으로 외손녀의 복리를 생각한다면 현재 상태로도 충분히 양육을 지원할 수 있고, 딸이 재혼하더라도 외손녀를 맡아 양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할 경우 법률상 후견인이 될 수 있는 등 실질적으로 양육에 애로사항이 없을 것인데, 외손녀가 원하지 않는 혼인관계에서 출생했다고 해서 친양자 입양을 허용한다면 후일 외손녀가 진실된 가족관계를 알게 됐을 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중대한 혼란에 빠지게 됨으로써 외손녀의 복리가 심히 저해될 것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조 판사는 “청구인들은 딸이 다시 혼인을 하게 될 경우 사위에게 진실을 알릴 것이고, 외손녀에게도 성인이 되면 사실을 알려줄 것이라고 하나, 현재 진실을 덮기 위해 친양자 입양 청구를 하는 마당에, 혼인을 앞두고 또는 성년인 된 외손녀에게 과연 진실을 알릴 용기가 생길지 더더욱 의문이며,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으로, 새로이 만나게 될 배우자와 그 가족들, 또는 외손녀가 다른 경로로 진실을 알게 된다면 딸의 새로운 가정 전체와 외손녀는 커다란 가정적 불화와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판사는 그러면서 “비록 자신의 딸을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마주하기 싫은 진실이라도 감추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라며 “청구인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위해 진실을 덮으려다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더욱 큰 고통으로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외손녀와 딸이 현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고 떳떳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보다 더 크고 바람직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 2심 “생모 있는데 굳이 친양자 입양을 해야 할 현실적인 이유 없어”
그러자 L씨 부부는 “딸과 A씨도 친양자 입양에 동의하고 있다”며 항고했으나, 울산지법 가사부(재판장 강한승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L씨 부부의 항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친양자 입양은 일반적인 입양과 달리 친생부모와의 친족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강력한 신분형성적 효력을 가지므로,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반드시 친양자 입양의 방법에 의해야 할 현실적인 이익 내지 필요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청구인들은 외손녀가 출생한 직후부터 5세인 현재까지 생모를 대신해 직접 양육해 왔는데, 친양자 입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가족관계등록부상 기재가 변동되는 것 이외에 현실적으로 양육환경이나 양육조건이 변경될 여지가 없고, 실제로 현재 상태에서 외손녀를 양육하는데 어떠한 제약이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친양자 입양을 해야 할 현실적인 이유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만약, 청구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사실상’이 아닌 ‘법률적’ 의미의 양육권이라면 굳이 가족관계의 본질을 훼손하는 친양자 입양의 방법에 의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친생부모가 친권을 포기하고 청구인들이 외손녀의 후견인이 돼 양육권을 행사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해결 방법”이라고 권유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따라서 청구인들의 친양자 입양 신청은 비록 형식적인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지만, 친양자로 될 외손녀의 복리를 위해 그 양육상황, 친양자 입양의 동기, 그 밖의 모든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친양자 입양이 적당하지 않다”고 항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 대법원 “외손녀 복리보다 생모 복리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
이에 L씨 부부가 재항고했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L씨 부부가 외손녀(5)를 친양자로 입양시켜 달라며 낸 친양자 입양신청 사건에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이 정당하다며 재항고(2010스151)를 기각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외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면 외조부모가 부모가 되고 생모와 외손녀는 자매지간이 되는 등 가족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 분명하고, 이 사건 청구는 주된 동기가 외손녀의 복리가 아니라 생모의 재혼을 용이하게 하려는 생모의 복리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며, 현재 상태에서 외손녀를 양육하는데 어떠한 제약이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친양자 입양을 해야 할 현실적인 이유나 필요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는 취지로, 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딸 재혼 위해 외손녀를 딸로 입양?…대법 “안 돼”
대법, 친양자 입양의 허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처음으로 제시 기사입력:2011-01-03 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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