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담뱃불에 의한 발화 가능성이 높더라도 화재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면, 화재가 발생한 업체에게 종업원의 흡연을 방치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화재원인 또한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05년 3월 대전 동구 정동의 한 건물 2층 인쇄 및 광고업체의 코팅실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불이 건물로 번져 3층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J(여)씨가 호흡부전 및 화상 등으로 숨지고, S(여)씨는 중화상을 입었다.
화재 현장조사를 마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구체적인 발화원인을 단정해 논하기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감정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따라 검찰은 화재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화재 원인과 관련된 사건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자 J씨의 유족과 S씨는 “건물전체가 금연구역인데도 발화지점인 인쇄업체는 종업원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조치하거나 별도의 흡연장소를 만들어 화재발생을 방지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현저히 해태해 종업원 중 누군가가 코팅실에서 피운 담배 불씨가 원인이 돼 화재가 발생한 것이므로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인쇄업체 코팅실은 인화성이 강한 인화지 등이 대량으로 쌓여있고, 인쇄 및 현수막 제작 등에 필요한 페인트와 신나 등도 있어 화재에 극히 취약한 장소이며, 건물 전체가 금연구역인데도 인쇄업체 종업원들이 평소 코팅실을 휴게실로 이용하며 흡연 등을 해 2회 가량 담뱃재를 담고 있던 종이컵에 불이 붙었던 적도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인 대전지법 제3민사부(재판장 황성주 부장판사)는 2007년 4월 화재로 숨진 J씨의 유족과 중화상을 입은 S씨가 화재가 발생한 인쇄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 내용은 구체적인 발화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이에 검찰은 화재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무혐의 처리하는 것을 수사를 종결하는 등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현재까지 규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을 뿐이므로, 화재가 피고 종업원들 중 누군가가 코팅실에서 피운 담배의 불씨가 원인이 돼 발생했음을 전제로 한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
또 “혹시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피고가 인화물질이 다량 존재하는 코팅실에서 흡연하는 종업원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하거나 별도의 흡연 장소를 만들어 종업원들의 담뱃불로 인한 화재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유만으로 곧바로 피고에게 화재와 관련해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항소심인 대전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조경란 부장판사)도 2007년 12월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여러 인정 사실에 의하면 화재가 담뱃불로 발생했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되나, 이런 의심만 가지고는 화재의 원인이 피고 직원들이 피운 담뱃불로 인한 발화임을 인정하기에 부복하고, 그렇다면 화재가 피고 직원 중 누군가가 피운 담뱃불이 불씨가 돼 발생했음을 전제로 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원고들은 화재가 피고 직원의 담뱃불로 인한 것이라고 볼 상당한 개연성이 입증됐으므로, 화재가 피고 직원의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피고가 명백히 입증하지 못하는 한, 피고는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나, 화재의 원인이 피고 직원의 과실에 있음을 입증할 책임은 원고들에게 있어 이 역시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건물 내 인쇄업체에서 난 불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인쇄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08다6755)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입증은 추호의 의혹도 있어서는 안 되는 자연과학적 증명은 아니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춰 모든 증거를 종합 검토해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 판정은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일 것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심에 의하면 평소 피고 직원들이 (불이 난) 코팅실에서 담배를 피웠고, 과거에도 코팅실에서 담배 재떨이로 사용하던 종이컵에 불이 붙은 일이 2회 정도 있었다는 피고 회사 과장의 진술, 화재 발생 직후 화재가 담뱃불로 인한 것이라고 추측한 피고 회사 실장의 발언, 이번 화재 발생 1시간 전에도 코팅실에서 직원이 담배를 피웠으며, 코팅실에는 불이 붙기 쉬운 종이류 등이 보관돼 있었던 점 등에 비춰 평소 코팅실에 담뱃불로 인한 화재가능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게다가 전기합선이나 제3자에 의한 방화가 화재의 원인일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더해 보면, 이 사건 화재가 담뱃불로 발생했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그런 의심만으로는 화재가 피고 직원들이 피운 담뱃불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아울러 화재의 원인이 피고 직원들의 과실에 있음을 입증할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는 이유로 화재가 피고 직원들이 피운 담뱃불로 인한 것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 “화재원인 불분명하면 피해자가 입증해야”
“담뱃불로 인한 화재의 의심은 가나…과실 입증책임은 원고가 해야” 기사입력:2010-11-05 17: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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