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살해범…항소심, 형량 높여 무기징역

대구고법 “인명경시 풍조에 경종…격리된 상태서 참회의 시간 가져라” 기사입력:2010-11-05 11:25:44
[로이슈=신종철 기자] 주유비를 대신 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귀던 트랜스젠더를 무참히 살해한 20대에게 1심은 징역 15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인명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참회의 시간을 갖으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범죄사실에 따르면 P(24)씨는 3~4년 전 경북 포항의 한 PC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다 손님으로 온 ‘트랜스젠더’ A(24)씨를 만나 사귀다가 한동안 연락 없이 지내던 중 지난 5월23일 다시 만나게 됐다.

이날 둘만의 좋은 시간을 가진 뒤 P씨가 주유소에서 기름값을 대신 내 달라고 요구했으나 A씨가 거절하면서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혼자 가 버리자 이를 괘씸하게 여겨 화가 난 P씨는 A씨를 찾아가 마구 때려 실신하게 했다.

그런 다음 A씨의 신용카드 등을 빼앗은 뒤 숙소에서 나오려 했으나, A씨의 동료에 의해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P씨는 실신한 A씨를 차에 태워 경산시 압량면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간 뒤 주먹과 발 그리고 돌로 마구 때려 살해했다.

그럼에도 P씨는 태연하게도 범행 다음날 새벽 자신의 동거녀와 음식을 먹고 빼앗은 A씨의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결국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1심인 대구지법은 지난 8월 P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P씨는 “피해자가 트랜스젠더인 것을 뒤늦게 알고 격분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고, 현재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보면 1심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반면 검사는 “피해자로부터 금품을 빼앗기 위해 피해자의 얼굴 등을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고 목을 졸라 무참히 살해했고,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피해 회복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 등에 비춰 보면, 1심이 선고한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각각 항소했다.

이에 대해 대구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임성근 부장판사)는 4일 사귀던 트랜스젠더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P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주유비를 피해자가 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구 때려 실신하자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목을 조르고 돌로 내리쳐 무참하게 살해한 뒤, 사체를 강둑 아래에 던져 버린 다음 동거녀와 함께 돌아다니며 태연하게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식비 등을 결제한 점 등에 비춰 보면 죄질이 매우 무겁고 수단과 방법이 대담할 뿐만 아니라 결과 또한 참혹하기 이를 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인 트랜스젠더인데, 일반 성인남자보다 현저히 저항능력이 떨어지는 피해자를 상대로 단지 금품을 빼앗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해사해 살해한 것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뿐만 아니라 피고인은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견디기 힘든 슬픔을 안겨 줬음에도 아직까지 그들에게 어떠한 피해 회복도 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의 경제적 능력 등에 비춰 봐도 앞으로도 피해 회복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더구나 피고인은 법정에서까지 자신의 형사책임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죽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가 하면,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하소연하는 등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강도살인죄는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 뿐인데 원심은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나름대로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작량감경한 형기 범위 내에서 징역 15년에 처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이미 실신한 피해자를 업고 나와 차량에 싣고 인적이 드문 범행 현장에 데려가 무참히 살해한 것을 두고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망쳐졌다고 하는 등 진정으로 반성하는 빛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작량감경한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인명경시 풍조에 대한 일반예방과 사회방위의 필요성까지 고려한다면 피고인에 대해 징역 15년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참회와 교화의 기회를 갖도록 할 필요성이 있어 1심 형량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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