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국가정보원의 민간사찰 개입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변호사)를 상대로 국가가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박 상임이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국가도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었는데, 법원이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판시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건은 지난해 6월 박 변호사가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시민단체와 관계를 맺은 기업의 간부 임원들까지 전부 조사해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통에 많은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힘겨운 상태다. 명백한 민간사찰이자 국정원법 위반이다. 희망제작소와 행전안전부와의 계약도 해약통보 받았고, 하나은행과의 후원사업도 무산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정원에서 개입했다고 한다”며 국정원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보도 직후 국가는 “박 변호사가 언론을 통해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독자들로 하여금 국저원이 직무범위를 넘어 다른 국가기관이나 국민을 사찰하고 의무 없는 행위를 강요했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변호사의 언론 제보로 인해 국정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됐고, 이는 곧 국정원을 산하 국가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가의 명예가 훼손된 것이므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제14민사부(재판장 김인겸 부장판사)는 15일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09가합103997)
재판부는 판단은 명쾌했다. 먼저 “국가나 국가기관이 업무를 정당하게 처리하고 있는지 여부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국가로서는 당연히 이를 수용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또 “국가는 잘못된 보도 등에 대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활용해 스스로 진상을 밝히거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통해 국정을 홍보할 수 있으며, 언론사 등을 상대로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 등 이미 충분하고도 유효적절한 대응수단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만약 아무런 제약 없이 국가의 피해자 적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 및 기능이 극도로 위축돼 자칫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으며, 국가 산하에는 실로 다양하고 많은 국가기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송이 남발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를 종합하면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예외적으로’ 명백한 허위사실의 유포나 악의적인 비방과 같이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 범위를 현저히 일탈하는 남용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도 적극적으로 법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국가는 언론매체나 제보자의 명예훼손 행위가 감시ㆍ비판ㆍ견제라는 정당한 활동의 범위를 벗어나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한정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악의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것을 증명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박 변호사의 언론제보 행위가 다소 근거가 부족하거나 진위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가 패소 판결했다.
◈ 참여연대 “국정원은 항소 포기하고, 각종 민형사상 소송 중지하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이날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은 민주주의 사회라면 국가 또는 국가기관에 대해 국민이 자유롭게 비판이나 의혹을 제기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며 “판결을 계기로 국가에 대한 국민의 비판 및 감시활동이 정당한 헌법적 권리이며 이에 대해 국가는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확고한 판례가 정립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정원이 항소를 포기할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 자유로운 비판과 감시활동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제기된 각종 민형사상 소송이 중지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민간사찰 개입 의혹 제기…박원순 ‘승’ vs 국정원 ‘패’
서울중앙지법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 기사입력:2010-09-16 14: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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