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도 좋아한 ‘바보 노무현’ 별명 탄생 비화

노무현 전 대통령 “바보가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기사입력:2009-05-28 11:26:00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원칙주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별명은 ‘바보’. 그는 보통사람 같으면 싫어할 ‘바보’라는 별명을 오히려 더 좋아했다. ‘바보’라는 의미가 못난이가 아닌 ‘올곧은 우직함’을 뜻함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정치인 노무현 이름 석 자 앞에는 늘 ‘바보’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녔고,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렸다. ‘바보 노무현’은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험난한 길을 택하는 모습, 즉 당선이 안 될 줄 알면서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 출마해 세 번째 낙선하자 한 네티즌이 붙여준 별명이다.

노 전 대통령도 007년 10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보가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바보’ 하는 게 그냥 좋아요”라고 별명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진 비화를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가 지난 26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사진(사진=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의 봉하사진관)
◆ “5공 청문회 때 알기 시작…초라한 바보의 길만 걸어가고 있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바보 노무현’의 별명을 지은 이는 당시 대기업에 근무하던 유중희(54)씨로, 현재는 제주도 모 기업에 중견간부로 일하고 있으며, 그 인연으로 제주의 소리에 별명 비화를 보내 공개한 것.

유씨는 지난 2000년 3월22일 유니텔플라자에 ‘바보 노무현’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고 이 글은 2주 뒤인 4월7일 노무현 홈페이지에 인용된 후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언론에서 이를 활용해 ‘바보 노무현’은 곧 정치인 노무현의 상징이 됐다.

당시 유씨는 “5공 청문회가 열리던 시대 정경유착의 간판으로 지목된 H그룹 왕회장을 증인으로 세웠는데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은 증인을 상대로 추궁하기는커녕 ‘증인님께서...?’하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실거릴 때 영특하지 못한 어느 바보 같은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글을 시작했다.

그는 “‘나는 증인과 같은 사람으로부터 자금을 받지도 않았고, 받을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논리정연하게 매서운 질문을 던지는 키도 작고 별로 잘 생기지도 않은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내 머리 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고 이어갔다.

유씨는 특히 “수도권 또는 전라도를 택해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임했더라면 남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좋은 자리를 몇 번 더 해 관록을 쌓았을 터인데 굳이 떨어질 것이 확실한 부산에서 내리 3번이나 떨어지는 초라한 바보의 길만 걸어가고 있었다”고 노 전 대통령을 표현했다.

이어 “그의 얼굴은 주름살만 더욱 깊어가고 현역 의원이 아닌 정치인의 모습은 더욱 초라한 바보일 뿐 이었다”며 “98년 우연히 찾아온 종로의 보궐선거에서 금배지를 다는 맛을 보았지만 이번에도 또 부산에서 출마하겠다는 바보의 길을 택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이번만은 노무현만이 바보가 아니라 그 지역구의 유권자들도 같이 바보이기를 바라고 싶다”고 희망했다.

유씨는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영특한 사람을 국회의원과 대통령으로 선출해 너무나 많은 실망을 경험했다”며 “그래서 이제는 전 국민이 우직한 바보가 되어 대한민국에서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며 소신과 지조를 지키고 야합하지 않는 바보 대통령이 탄생되는 그날을 기대해 보고 싶다”고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끝으로 “‘바보 노무현’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바보 같은 부산시민들! 노무현 바보! 부산시민 바보! 그리고 나도 그 바보의 대열에 끼고 싶다”고 마무리했다.

◆ 노 전 대통령 답장 “‘바보 노무현’이 ‘행복한 노무현’ 될 것 같다”

또한 유씨는 그해 6월9일 노 전 대통령이 보내온 회신 이메일도 공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씨에게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선거에 패하고 나서 아픔도 있었다”며 “이때 선생님의 저에 대한 격려의 글은 제게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감동이라고 표현해야 할지...제가 헛되게 산 게 아니구나, 제 선택은 옳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옛말이 있지요. 우리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제게 무엇을 바라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어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생각난다. 제게 보내주신 이 마음 잊지 않겠다”며 “이 소중하고 귀한 인연, 살아가는 동안 가장 아름다운 인연으로 가꾸고 키워보려고 한다”고 화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6월6일 정치인 최초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팬클럽이 행사를 해서 대전에 다녀오기도 했다”며 “선생님 덕분으로 ‘바보 노무현’이 ‘행복한 노무현’이 될 것 같다”고 행복해했다.

한편 유씨는 이 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편한 길을 내버려 두고 올곧은 한길을 걸어왔지만 계속 낙선해 안타까운 마음에 ‘바보 노무현’이란 글을 올렸는데, 다행히 당신께서 노엽게 생각하지 않고 잘 받아주셨다”고 회고했다.

유씨는 “노 전 대통령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지만 한 차례도 만난 적은 없다”며 “두 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악수라도 한 번 할까’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멀리서 좋아하고, 잘 되기를 기원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유씨는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