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특수준강간 사건 '유서의 증거능력' 인정 유죄 원심 파기환송

기사입력:2024-05-07 12:06:42
대법원.(사진=대법원홈페이지)

대법원.(사진=대법원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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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슈 전용모 기자] 대법원 제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위반(특수준강간) 사건의 피고인들의 상고이유 주장을 받아들여 이 사건 유서(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14년 이상 경과된 후 작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이를 유죄의 주요 증거로 삼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서울고법)에 환송했다(대법원 2024. 4. 12.선고 2023도13406 판결).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들, D(이하 ‘망인’)가 2006. 11. 19. 심야경부터 다음날 새벽 4시경 사이에 술에 만취하여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 E(여, 당시 14세)를 인근 초등학교 벤치로 옮긴 후, 피고인 C는 피해자에게 유사성행위를 하고, 계속하여 망인, 피고인 A, 피고인 B이 순차적으로 피해자를 간음하여, 피고인들이 망인과 합동하여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했다는 것이다.

피고인들과 망인은 2006년경 ○○중학교 3학년에 재학하였던 학생들로 서로 친구사이이고, 피해자 E는 당시 같은 학교 2학년에 재학했던 학생으로 피고인 B과 교제하다 헤어진 사이였다.

1심(서울남부지방법원 2022. 7. 8. 선고 2021고합504 판결)은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설령, 이 사건 유서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유일한 증거인 이 사건 유서는 핵심적인 내용이 피해자와 그의 친구 G의 진술, 그밖에 객관적인 정황과 배치되는 점,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당시 성폭력을 당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고, 이 사건 직후 이루어진 산부인과 진료과정에서 성폭력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 여러 사정들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유서는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유서의 기재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원심(서울고등법원 2023. 9. 7. 선고 2022노1982 판결)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들에게 각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각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망인이 2021. 3. 31.경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 직전 작성한 유서(이하 ‘이 사건 유서’)가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되었다고 보아 형사소송법 제314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사건 유서에는 망인이 자신의 범행을 참회하는 듯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망인이 피고인들을 무고할 만한 뚜렷한 동기나 이유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피고인들 스스로도 당시 망인 및 피해자와 함께 초등학교 등에서 술을 마셨던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당시 만취 상태에서 귀가했는데 속옷에 피가 묻어 있었고 사타구니 부근이 아팠으며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고 사후피임약 등을 처방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유서가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되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평가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 사건 유서의 내용이 법정에서의 반대신문 등을 통한 검증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빙성이 충분히 담보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망인이 자신의 범행을 참회할 의도로 이 사건 유서를 작성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즉, 허위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 정도로 작성 동기나 경위가 뚜렷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망인은 이 사건 이후 약 14년 이상 경과하기까지 피고인들이나 피해자에게는 물론,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이 사건을 언급하거나 죄책감 등을 호소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망인의 친구 F는 망인이 자살하기 전날 밤까지 함께 술을 마실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는데, 망인은 F에게도 세무사 시험 낙방으로 인한 괴로움 및 이 사건과 무관한 별도 학교폭력 전력에 관한 걱정 등을 호소했을 뿐, 이 사건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나아가 이 사건 유서에는 피고인들의 실명이 기재되어 있고, 공소시효가 도과되지 않았다는 언급도 있다. 망인이 반성과 참회보다는 피고인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이 사건 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 경우라면 이 사건 유서에 진실만이 기재되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망인은 수사기관에서조차 이 사건 유서의 작성 경위, 구체적 의미 등에 관하여 진술한 바가 없다.

수사기관은 고소장 등이 접수되면 통상적으로 참고인 조사를 통해 고소인 등의 진술을 직접 청취하면서 고소장 등의 작성 경위 등을 확인하고 다소 포괄적·추상적인 부분에 관해서 구체적인 진술을 이끌어내며 모순적이거나 객관적 증거 등과 배치되는 부분을 따져 묻는다. 이러한 과정은 고소장 등 기재내용의 신빙성을 검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이고 그 과정에서 허위 또는 과장된 진술이 드러나거나 걸러지기도 한다. 그런데 망인은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한 직후 자살했고, 수사기관은 망인에 관한 변사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유서를 발견하고 비로소 수사에 착수했다. 망인은 수사기관에서조차 이 사건 유서의 작성 경위를 상세히 밝히거나 그 기재내용의 구체적 의미를 세부적으로 진술한 바가 없다.

이 사건 유서는 사건 발생일 즈음이 아니라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14년 이상 경과된 이후 작성됐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져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망인이 이 사건 유서의 내용처럼 오랜 시간 상당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기억이 과장되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망인이 죽음 직전 A4 용지 1장 분량으로 작성한 이 사건 유서는 그 표현이나 구체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사건 유서의 내용이 객관적 증거, 진술증거로 뒷받침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 유서의 내용 중 공소사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핵심 부분은 피고인들 및 망인이 피해자와 술을 마시던 중 피해자가 인사불성이 되자 피고인 C는 유사성행위를, 망인, 피고인 A, 피고인 B는 순차적으로 간음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유서에는 피고인들의 구체적인 행위내용에 관한 세세한 묘사가 없고, 단순히 ‘유사성행위’, ‘성관계’라고 추상적으로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위 각 행위 당시의 구체적 정황 등에 관한 상세한 내용도 기재되어 있지 않고, 위 각 개별 행위에서 망인이나 피고인들이 어떠한 실행행위를 분담했는지, 시간적ㆍ장소적 협동관계가 있었는지 등 구체적ㆍ세부적 내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피해자는 당시 만취 상태에서 귀가했는데 속옷에 피가 묻어있었고, 사타구니 부근이 아파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는 것이므로, 그와 같은 사정이 당시 망인 또는 피고인들 중 누군가가 피해자에 대하여 성적 행위를 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는 있으나, 피고인 C의 유사성행위 및 망인, 피고인 A, B의 순차적 간음행위가 모두 존재했음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 피고인들 또는 망인 중 일부만이 범행을 하고 나머지는 가담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 피고인들 또는 망인이 간음행위가 아닌 다른 성적 행위를 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 유서의 내용 중에는 피해자의 진술 등과 명백히 배치되는 부분도 존재한다.

이 사건 유서에는 당시 망인과 피고인들이 술을 마시던 중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 범행을 계획하여 피해자를 술자리로 불렀다는 취지로 기재되어 있다. 반면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당시 동성의 친구인 G의 제안에 따라 술자리에 가게 되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G은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 망인으로부터 술자리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은 후 자신 혼자만 술자리에 가는 것이 무서워서 망인 내지 피고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이 피해자에게 제안하여 피해자와 함께 술자리에 가게 되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피해자와 G의 위와 같은 진술내용에 따르면 피고인들 내지 망인은 G를 불렀을 뿐 피해자를 부른 적은 없다는 것이므로,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 범행을 미리 계획하고 피해자를 술자리로 불렀다는 이 사건 유서의 기재내용과 위 진술내용은 명백히 배치된다.

-이렇듯 이 사건 유서는 그 작성 동기가 명확하지 아니하고, 수사기관에서 작성 경위, 구체적 의미 등이 상세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게다가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14년 이상 경과된 후 작성되었고, 그 주요 내용이 구체적이고 세부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으며, 다른 증거에 의하여 충분히 뒷받침되지도 아니한다. 오히려 일부 내용은 피해자의 진술 등과 명백히 배치되기도 한다. 망인에 대한 반대신문이 가능했다면 그 과정에서 구체적, 세부적 진술이 현출됨으로써 기억의 오류, 과장, 왜곡, 거짓 진술 등이 드러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제314조에서 ‘그 진술 또는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란 그 진술 내용이나 조서 또는 서류의 작성에 허위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고, 그 진술 내지 작성 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대법원 2006. 9. 28. 선고 2006도3922 판결 등 참조).

형사소송법은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조서 등 서면증거에 대하여 일정한 요건 아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데, 이는 실체적 진실발견의 이념과 소송경제의 요청을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므로, 그 증거능력 인정 요건에 관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ㆍ적용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313조는 진술조서 등에 대하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되는 등 엄격한 요건이 충족될 경우에 한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직접심리주의 등 기본원칙에 대한 예외를 정하고 있는데, 형사소송법 제314조는 원진술자 또는 작성자가 사망ㆍ질병ㆍ외국거주ㆍ소재불명 등의 사유로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진술할 수 없는 경우에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다는 점이 증명되면 원진술자 등에 대한 반대신문의 기회조차도 없이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다 중대한 예외를 인정한 것이므로, 그 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ㆍ적용하여야 한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314조에서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에 대한 증명’은 단지 그러할 개연성이 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 즉 법정에서의 반대신문 등을 통한 검증을 굳이 거치지 않더라도 진술의 신빙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어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와 전문법칙에 대한 예외로 평가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0도12 판결, 대법원 2014. 2. 21. 선고 2013도12652 판결,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16도17054 판결 등 참조).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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