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 민변(회장 정연순)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이 공권력의 행위는 일응 적법하다는 구시대적 ‘행정행위 적법성 추정론’에 입각해 사건의 본질에 애써 눈감고, 무엇보다 공무집행의 적법성에 대한 법원의 심사권을 스스로 방기한 판결”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에게만 유독 가혹한 법원의 태도에 다시 한 번 참담함과 절망감을 느낀다”고 혹평했다.
민변은 “재판부는, 집회 당시 경찰이 행진로 및 행진 인원의 변경 등을 협의하거나 권유하는 등의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이틀 전 언론을 통해 민주노총에게 ‘플라자호텔과 대한문 앞, 숭례문으로 가는 도로는 내어줄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했다는 점만을 근거로, ‘적법한 금지통고’라고 인정했다”며 “그러나 진지한 협의 절차도 없이 언론에 입장을 표명한 것만으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금지통고가 적법해질 수는 없다”고 판결을 반박했다.
또한 재판부는, 당일 오후 2시 55분경 약 6000여명의 집회참가자가 세종대로 전 차로를 점거하면서 경찰의 질서 유지선을 넘어 광화문 광장으로 진출을 시도했다고 하면서, ‘차벽 설치’도 위법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어 “그럼에도 이러한 ‘선제적’ 차벽설치를 적법한 것으로 본다면, 이는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해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 ‘긴급을 요하는 경우’를 그 요건으로 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를 장식규정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변은 “판결 선고시 재판부는 ‘설사 금지통고가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혹은 ‘설사 차벽설치가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혹은 ‘백남기 농민에 대한 직사살수는 위법하지만’과 같은 이유를 누차 밝혔는바, 이러한 판단은 적법한 공무집행에 대한 심사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경찰이 차벽으로 설치한 버스는 무조건 존중돼야 한다는 전제 하에, 차벽을 넘어 집회를 계속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모든 불상사의 책임을 돌리는 논리에 다름 아닌 것”이라며 “이 같은 논리대로 라면, 공권력은 앞으로도 무제한적으로 특정 장소에서의 집회를 금지할 것이고, 무차별적으로 경찰버스를 동원해 시민을 가로막는 벽을 쌓을 것이며, 시민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폭력적 살수를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변은 “이번 판결은 공권력의 적법성에 대한 최소한의 심사를 포기하고, 집회를 주최하는 시민에게 엄포를 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며 “항소심 법원이 원심의 위와 같은 판결을 바로잡아 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