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29일 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 명의로 법관과 법원공무원에게 보낸 <존경하는 법원가족 여러분>이라는 제목의 E-mail 서신에서 “신중하고 의연한 처신으로 국민들에게 지혜롭고 성숙한 법원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김황식 차장은 “가을이 오면 6년간 법원을 이끌어 온 최종영 대법원장이 퇴임하기 때문에 지금 새 대법원장은 어떤 분이어야 하는지를 두고 (사법부) 안팎에서 논의가 한창”이라며 “사법부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증대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큰 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이어 “법원가족과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분이 대법원장이 됐으면 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을 담아내기 위해 법원가족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또한 필요하다”고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김 차장은 “다만 의견표명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우리 법원에 걸맞지 않게, 특정 성향을 지향하는 듯한 방식이나 법원 가족의 내부 갈등이 조장되거나 구성원의 명예가 손상될 우려가 있는 방식 등은 지양돼야 한다”며 “특히 법원가족 개인이나 일부의 의견이 법원 전체의 의견으로 오해되고 마치 법원 내부에 갈등이 있는 양 비춰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의 이번 서한 발송은 중간간부 법관이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 임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한 법원노조는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대법원장 외부수혈론에 가세하고 있어 자칫 사법부가 내홍(內訌)을 겪고 있는 것으로 외부에 비춰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다 빨간 등이 켜진 현재 시점에서 대법원이 초기 진화에 나서지 않을 경우 법관들은 법관들대로, 법원공무원노조는 노조대로 수위가 높아지는 ‘경고성 발언’이 잇따라 제기될 경우 겉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아 과거와는 다른 <사법수뇌부 vs 평판사 및 중간간부 판사 vs 법원공무원 + ∝>라는 사법파동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법의 A부장판사는 27일 익명을 요구하며 기자들에게 배포한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라는 글에서 “평판사 출사의 외부인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할 경우 특히 대법관과 법원장을 비롯해 고법·지법 부장판사 이상의 법관들이 큰 당혹감, 자괴감, 반감을 느끼거나 허탈, 냉소에 빠져 패닉상태가 일어날 수도 있고 임명반대 서명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법원노조도 25일 노동자단체 및 시민단체와 함께 ‘대법원장 후보자 범국민 추천위원회’를 결정하고 대법원장 후보자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추천하겠다고 밝히며 추천 후보자 선정을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