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변호사회, 도산법률 전문가 김관기 변호사 초청 강연

금융피해자의 인권과 변호사의 역할 기사입력:2016-07-19 16:36:16
[로이슈 전용모 기자]
김관기 변호사 초청 강연회가 18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부산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변호사, 법학전문대학원생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강연회는 부산지방변호사회(회장 조용한)가 주최하고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위원장 이채문)주관으로 마련됐다.

오랜기간 도산법률서비스 분야를 개척해 온 김관기 변호사가 ‘금융피해자의 인권과 변호사의 역할’(금융파탄자에 대한 국가책임을 중심으로)을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은 김관기 변호사 강의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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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부산변협회장(사진우측 9번째)과 김관기 변호사(우측8번째) 등이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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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피해자의 인권과 변호사의 역할] 김관기 변호사

거창한 제목이라 망설여지는 강연이지만, 다중채무자라서 보편적 인권을 부정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짧은 생각이나마 말씀 드리는 자리를 수락하였습니다.
저는 이 강연을 어느 회사법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오는 표현을 인용하는 것에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Our mission is to understand how the legal system affects the workings of the incorporated firm. The achievement of that goal presupposes some understanding of how firms work. And the first important lesson to be learned about the behavioral characteristics of firms is that there aren’t any. Firms do not think, feel or react. Individuals do. Individuals respond to—are “regulated by,” if you please—a set of incentives and disincentives far broader than any provided by the legal system. 우리의 과제는 법인 기업의 작동에 법체계가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기업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기업의 행태적 특성에 관하여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교훈은, 기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은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반응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개인이다. 개인은 법 체계가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여러가지 유인과 억지요소에 반응—선호에 따라서는 규제된다는 말을 써도 되겠다—한다. Michael P. Dooley, Fundamentals of Corporation Law (1995), p.1

기업, 금융기관, 정부와 같은 표현을 쓰면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것들이 피와살이 있는 개인들의 활동을 추상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그래서 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 전체의 공적 자금을 회수하기 위하여, 개인은 희생되어도 불가피하다는 정서에 순응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잘못입니다. 개인이 없으면, 기업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수병이 없으면, 군함이 쓸모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군의 첫 훈련은 배를 버리고 탈출하는 것에 집중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그 기업활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도산하는 기업으로부터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고 구해서 다시 활동을 하는 것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개인과 기업의 파산, 회생 실무에 종사하면서 얻은 결론이며, 2014년의 대형 여객선 침몰 사고 이후에는, 기업을 기울어지는 배에, 사장과 종업원을 그 안에 타고 있는 선장, 승조원과 승객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거대기업을 대변하면 엘리트 변호사, 시정의 평범한 갑남을녀(요즘 말로 개 돼지라고 하던가요?)를 대리하면 그저그런 로컬 변호사라는 시각은 단순히 틀렸습니다. 그것은 기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은 횡령, 배임, 사기 또는 이에 준하는 형사 사건으로서, 개인을 지키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인권을 옹호한다는 변호사의 기본 가치에 충실한 것은, 추상적인 기업이나 조직의 이익을 관철하는 것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피와 살이 있는 자연인, 그 중에서도 약한 자를 옹호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자세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변호사들은 채무자를 대변하는 일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들 사건이 직업으로서의 지속가능성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약속을 깨도록 허용하는 것이 높은 수준의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노예 또는 그보다 못한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안전망이 우리 국가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의식은 여기까지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산법 전문인 마저도, 주위 사람에게 빌린 빚은 갚아야 하고, 공적 자금은 반드시 회수되어야 하며, 또 지금은 빚을 졌더라도 의사, 약사와 같이 앞으로 돈을 벌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는 당분간은 채무로부터 걸어나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또 남의 돈을 빌려서 사업을 한 주제 넘은 자들이 더 이상 생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빚을 지고 있어 변제자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고리대부를 받는 것은, 최소한 소극적으로라도 기망행위를 한 것이고, 임대차계약서를 위조해 오는 지 마는 지 별 상관하지 않았던 대부업자도 기망행위에 속은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매매업소 선불금을 받고 일하지 않은 경우도 사기에 해당하였습니다.

계약에 의한 채무에 대하여는 현재 가진 물적 자산을 전부 주고 나머지는 면한다는 취지의 개인파산, 면책 제도가 실제 운용되기 시작한 지 15년 가까이 되었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사람의 권리라는 의식이 확립되지 못한 것과 관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 부분이 정치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경제적 채무자들은 정치적으로도 조직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투명인간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가 버리고, 자신이 파산법정에 섰었다는 것, 거의 가까이 갔었다는 것을 평생 망각하고 싶은 부끄러운 비밀로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파산을 장려할 수도 없습니다. 국민국가는 최종의 신용공급자로서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은행 등 금융산업, 실물기업, 가계 사이에 부단히 부채가 발생하고 소멸하는 경제활동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상처 입는 개인들의 인권을 옹호하여 줄 수 있는 것은 변호사 밖에 없습니다. 우리 변호사들은, 국가 권력에 대항하여, 약한 개인의 입을 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로부터 보수를 받아야 하고, 국가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실무에 대하여 도덕적 정당성을 확신하지 못하면, 전문 직업인으로 지속할 수 없습니다. 하는 일이 영혼 있는 전문직업인을 찾는 현대의 고객은 자신이 받는 서비스가 공감과 동정 위에 기반하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앞서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지식과 솔루션의 제공은 피와 살이 있는 전문인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없는 전문직업인이 AI보다 나을 것이 있을까요? 처음 도입된 것은 파산 영역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http://news.zum.com/articles/30645036?c=08
제가 처음 변호사 시작할 때만 해도 법률과 판례, 실무의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법률 실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절차의 기술성 만으로도 보통 사람은 넘기 힘든 장애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모든 법률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됨으로 인하여 지식의 전달은 변호사가 반드시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 즉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명한 자로서의 역할도 거의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도산 절차는 집합적인 권리행사라는 특성 때문에 진행에 고려할 요소를 정형화한 서식을 채워 넣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서식에 채워 넣는 방식으로 실무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자동화’될 수 있습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52480771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변호사 면허 없는 ‘사무장’들이 영업을 주도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장법인, 사무장법률사무소에 연루되는 것의 대가는 치명적입니다. 물론 이들이 결사적으로 벌이는 광고경쟁이 국민들 사이에 도산제도에 대한 인식을 확산한 순기능은 있습니다만 변호사의 직역 잠식의 수준을 넘어섰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제 변호사가 이 도산 실무를 하려면 ‘직영’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고정비용을 부담하면서 지속가능한 영업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지금보다는 단가를 올려야 하고, 사무장도 기획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해 주는 것을 넘어서 변호사 정도의 식견과 윤리성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이 채무자의 인권을 옹호하여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영혼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채무자는 죄의식을 가지고 옵니다. 최근 들어서는 파산절차, 개인회생절차 등에 대하여 법이 부여하는 권리의 하나라거나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의 일종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가끔 눈에 띕니다만,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은 재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거의 옷을 세탁해 입은 걸인의 수준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정치적 투명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파산법정의 신세를 진 일, 파산변호사의 고객이 되었던 일을 일생에 있어서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어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절망과 죄의식이, 낙태와 성형수술 같은 중요한 문제를 정당한 면허를 가지고 직업적 기강에 따라 행동하는 도덕적으로 충만한 전문인의 손을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 인권인가?

그렇다면 보다 나은 개인 절차의 정당성은 무엇이며 실무를 위하여 우리가 내면화하여야 할 근본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추구하는 여러가지 목적을 제시하기에 앞서서 말입니다. 민사법상의 도그마라고 할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집합적 절차의 시행으로 우회하는 것은 단순히 정책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것 이상의 정당화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인권에서 찾아야 합니다. 즉 채무를 진 상태의 유지가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기반하여야 할 것입니다.

제공하는 급부의 범위에 제한이 있는 경우, 금전채무는 채무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줍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금전을 어떻게 조달하는 지는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 초의 어느 철학자는 영주에게 현물을 바쳐야 했던 농노가 해방되는 과정의 중심에 조세를 돈으로 내도록 한 것이 있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재산과 관련된 모든 채무는 현물 변제를 거부하고 돈으로 지불할 수 있다는 규정은 이른바 사법(私法) 영역에서의 인간 자유 대헌장(Magna Carta)으로 간주 되어 왔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인격적 의무든 돈으로 면할 수 있는 권리였던 것이다. 농민으로부터 일정량의 맥주나 가금(家禽) 또는 꿀을 요구할 수 있는 영주는 이를 통해서 특정한 방향으로 농민의 활동을 규정한다. 그러나 영주가 화폐 조세만을 부과하는 순간, 농민은 꿀벌을 칠 것인가 가축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할 것인가를 완전히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인 노역의 영역에서는 대리인을 고용할 수 있는 권리가 형식적으로 그와 동일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대리인에게 객관적으로 이의를 제기할만한 이유가 없는 한, 상대방은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 ㅡ 게오르그 짐멜 지음 김덕영 옮김, 돈의 철학 (2013) 485.

그렇지만, 이것은 채무자가 금전으로 바꿀 수 있는 재산이 충분하거나 노동이 감당할 수준 이하의 부채를 부담한 경우에만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금전채무의 강제력은 실질적, 경제적 노예상태를 만들어 냅니다. 왜냐 하면 재산이 없는 자는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를 넘어서는 자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채권이 자유롭게 양도되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사람에 대하여 실효적 지배가 행사되는 상태, 즉 노예상태가 전적으로 합법적인 제도로 고양됩니다. 성매매피해자, 염전에 감금된 피해자들이 고리대금 채무자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 현행 법제처럼 채무가 상속된다면 사실상 신분의 세습도 이루어집니다.

금전채무는 어쩌면 노예나 농노보다 못한 상태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예나 농노는 그저 노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무를 다 이행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금전채무에는 양적 제한이 없습니다. 무한히 증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노동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상태는 인격의 자유라는 정신에 반합니다.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깨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 개념에 충실한 것이 되겠습니다. 특별한 재산이 없다는 의미에서 가난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었던 현실이고, 누구에게나 불행은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 보호를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금전채무의 지급불능에 이르러 파산을 선언함으로써 구제를 얻는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근로관계의 보호에서 나타나는 실업보험 같은 강제된 사회보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차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부자는 이자율을 올리는 것으로 대비할 것인데 여기에 채무자를 추급할 민사법적 권위마저도 박탈 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대부자는 그러한 사정도 대부 여부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또 이자율을 정함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타인의 과실로 생명을 잃고 상해를 입었는데 그것을 불법행위 가해자로부터 보상 받지 못하고 게다가 가해자를 상대로 추급할 권위가 봉쇄될 가능성도 잠재적 피해자에게 보험에 들어 미리 대비하게 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부담하게 하는(자기보험) 방식으로 비용을 발생시킵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야기합니다. 재무 파탄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채무를 면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누구든지 과도하게 차입을 하려고 할 것이고, 아무 상관 없는 타인이 예측하지 못한 상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할 의무를 게을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대부를 받고 위험한 활동에 나서려고 하는 자는 보통 사고를 일으킬 개연성이 높은 자입니다(역선택, adverse selection). 개인 채무자의 면책을 옹호하기 위하여 이러한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도덕적 해이를 근절할 것을 기반으로 면책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제도 자체를 침해할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보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주택을 화재보험에 들면 경계심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특히 방화범들이 화재보험에 가입하려고 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재보험 산업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보험자는 가입자가 보험으로부터 이득을 얻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비용을 분담하게 함으로써 도덕적 해이가 보험질서를 파괴하거나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개인에게 있어서, 파산의 선언은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고, 스스로도 잊고 싶은 트라우마를 형성합니다. 또 신용의 추락으로 당분간은 대출을 거절 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을만큼 금융거래에 있어서 개인을 무책임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고의로 위법한 행위를 하거나 중과실로 생명, 신체를 침해한 자들을 걸러내는 규칙이 있습니다. 법률 제566조 제3호, 제4호. 이들 예외조항은 채무자가 다른 금융채무에 대하여 면책을 얻는 경우라고 할 지라도 피해자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못하고 내부화하게 함으로써, 심리적 억지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들 불법행위 피해자 외에도, 국가, 근로자, 부양가족은 파산절차를 투과합니다(법률 제566조 제1호, 제2호, 제5호, 제6호, 제8호, 제9호). 기존의 금융채무로부터 새 출발을 얻어 재무상태가 개선된 비교적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개인을 추급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금융계약에 의하여 발생한 부정적 결과를 제거하는 것은 채무자 개인의 인권 신장 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 추구에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돈을 빌리는 것이 개인의 선택인 이상 그 결과가 노예상태라고 하더라도 용인해야 한다는 논변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개인의 재정적 불행은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가족, 친구 그리고 넓게는 사회 전체에 퍼집니다. 그것은 수많은 자살과 범죄의 동기를 구성한다는 점은 바로 이것을 증명합니다. 둘째, 차용하는 당시에는 개인은 위험을 정확하게 평가할 능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금융산업은 개인의 신용을 늘 평가합니다. 채무자의 근시안적인 선호는 “돈은 꾸지도 말고 빌려 주지도 마라. 빌려 주면 돈과 친구를 한꺼번에 잃기 쉽고 빌리면 절약의 습성이 무디어진다.”는 대사(햄릿)에도 표현되어 있으므로 실무가 입장에서 심리학적 논증까지 들이댈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왜 피해자인가?

개인절차가 보편적인 인권 내지 안전망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모든 계층으로부터의 낙오자를 통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가 왜 피해자냐고요? 피해자가 가치중립적인 개념임을 수용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지배세력은 그가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자원을 이전하기 위하여 중앙은행을 통하여 화폐라는 채무증서를 발행하여 이들이 시장에서 자원을 동원하도록 합니다.

고대에는 정복사업에 나서는 군인, 왕실과 신하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현대에는 국민 전체의 안전과 소외 받는 가난한 자의 복지를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직접 복지 지출을 하든 그 대신에 기업활동을 통하여 그것이 요소소득의 형태로 개인들에게 가기를 기대하든(낙수효과: trickle-down), 은행시스템의 신용창조과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집행 됩니다.

은행은 국가의 후원 하에 금융부채라는 형태로 화폐를 창조하며, 이것을 획득하기 위한 기업과 소비자의 경제활동이 소득, 소비, 투자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성공적인 흐름 뿐만 아니라 실패도 일상적입니다. 그러한 거대한 메커니즘에서 실패하는 자를 피해자 말고 무엇으로 규정하겠습니까. 마치 알에서 깨어난 거북이 바다로 가기까지 수많은 천적의 먹이가 되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기업도, 가계도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빈곤층과 중산층 보호

첫째, 언론에 보도 되었던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빈곤층의 경우에는 파산 보호가 미쳐야 하는데 별로 다툼이 없는 듯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채무를 면하게 해 주어 생을 포기하기까지 하는 절망감을 약간이라도 해소하게 해 주는 것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복지급여가 나가야 합니다. 가난을 해소해 주는 것은 법정의 책임이 아니고 정치인과 사회복지 공무원이 할 일이니, 우리 파산 법률가들이 관심을 쓸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복지급여를 받는 자들이 그것으로 금융부채를 이행한다면, 사회복지급여의 효용은 현저히 저감될 것입니다.

복지 급여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금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즉 사회안전망의 부담을 경감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먹고 살아 주기만 해도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은 이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금융을 하는 것은 약탈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런 사람들에게 일부라도 변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복지정책의 실효성을 감소시킵니다.

둘째, 중산층의 보전이 사회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주택담보대출을 낀 아파트와 같이 약간의 재산을 가지고 있고, 정기적으로 소득을 버는 사람들이 소비자로서는 보호를 받기에 적격입니다. 현재 가진 자산을 채권자들의 변제를 위해 내 놓고, 앞으로 버는 소득은 자신을 위하여 소비하고 저축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 가진 자산을 지키는 대신에 그 청산가치 이상을 장래 순차적으로 갚아 나가게 하는 개인회생 제도가 실무적으로 적합합니다. 집을 지고 기는(‘가는’의 오타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집을 내려 놓는 상황이 되면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심하게 침해 받습니다.

빈곤층과 중산층의 부채 절감은 이들의 소비여력을 회복하여 줍니다. 불황 탈출의 엔진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경제학자들도 보통은 에둘러 말하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경제 분야 최고의 언론인 중 한 명인 데이비드슨은 많은 경제학자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통계만 조금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를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증가한 가계 부채 부담이 소비자 지출이 급락한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데이비드슨의 사례는 경제학계의 무능을 드러내는 실례다. —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박기영 옮김, 빚으로 지은 집, 제192면.

레버드 로스로 인한 불황이 한창일 때 재정 적자나 정부 채무를 걱정하며 긴축적인 재정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으며,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의 근본적 문제가 과도한 가계 부채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재정 지출 확대보다 가계 부채 재조정이 더 효과적인 정책이라 생각한다.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지출을 가장 크게 늘릴 사람들의 손에 현금을 쥐어 주는 것인데 채무가 있는 가계의 한계 소비 성향은 매우 높다. 재정 지출 확대와 비교해서 채무 재조정이 더 효과적인 이유는 대침체 시기에 대한 영향력 있는 <케인지언> 모형들에 의해 설명된다. — 같은 책 제238면.

중산층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가상적인 예를 들어 보기로 합니다. 어느 개천에서 용이 난 변호사가 2006년에 10억원의 가치 있던 집을 7억원의 담보대출을 끼고 샀다고 합시다. 3억원은 근근이 10년을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입니다. (이것은 나름 성공한 사람의 스토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경제 불황으로 영업도 안 되는 와중에 집 값이 6억원이 되었다고 칩시다.

이 변호사는 평생의 저축을 날렸고, 집을 팔아도 개인적으로 1억원의 빚을 더 갚아야 합니다. 즉 깡통 주택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평생의 저축을 날린 것은 단기간에 개선할 수 없지만 일견 파산으로 약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돈을 버는 변호사도 차별 받지 않고 파산제도를 적용 받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 사람이 파산을 신청하면 담보권자가 담보를 실행하고도 부족한 채무 1억원을 면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변호사가 다른 곳에서 6억원을 꾸어다가 "담보가치 즉 집 값이 6억원이니 그것만 받으라"고 하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담보물권의 불가분성이라는 원칙은 담보된 채무 전액을 갚은 다음에야 그것을 온전히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개인회생제도에서도 대략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개인회생절차가 아닌 제2편의 회생절차에서는 채무자는 담보가치만큼만 변제하면 그 이상의 채무를 기재하고 있는 저당권의 말소를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변제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 변호사는 6억원을 어디에서 빌려다가 갚고, 1억원에 대하여는 그 동안 누적하였던 다른 채무들와 함께 일부만 상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 변호사가 그 동안 담보대출 이자도 내고 사무실도 잘 안 되어 3억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고 가정합시다.

담보가치 6억을 초과한 채무 1억과 합하여 무담보채무가 4억원으로 분류되고, 이 4억원을 청산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월 300만원을 5년 동안 즉 1억8천만원을 갚는 계획으로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담보채권자로서야 당연히 반대할 유인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2편에서 늘상 도입 여부가 거론되고 있는 절대우선의 원칙(absolute priority rule)이 적용된다면 담보권자에게 담보가치만큼 충분한 보호가 있으니 그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순위 채권자들은 채무 조정에 동의할 수 있고 이 경우 계획이 강제로 인가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개룡남 변호사는 남은 평생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이전에 날려버린 평생의 저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크램다운으로 지켜낸(경매로 인한 가격저감이 없었으므로 사실 실질은 채권자를 보호한 것입니다) 집의 가치가 다시 상승하여 이전에 잃어버렸던 저축을 회복하기를 꿈꿀 기회가 됩니다.

기업인의 보호
마지막으로 파산 제도는 상인 즉 기업인의 보호라는 전통적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모든 혁신기업가는 채무자일 수 밖에 없다고 슘페터는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새로운 제품, 새로운 생산방식을 구현하는 혁신기업은 실패의 위험이 매우 큽니다. 이것에 개인의 운명을 전적으로 노출시킨다는 것은 안정을 추구하는 보통 사람이 결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식회사 제도의 도입으로 인하여 법인의 대표, 대주주로서 기업인(entrepreneur), 전문경영인 역할을 하는 자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은 법제상으로는 감소되었지만, 기업금융에서 기업의 특수관계인을 ‘보증’으로 묶는 관행이 없어질 수 없는 이상 이들에 대한 파산보호 적용의 필요성은 의연히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중소기업이 개인사업자의 형태로 운영 됩니다. 이들에 대한 개인파산의 보호는 사업의 청산과 순조로운 재기를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무는 비관적입니다. 현재 자산과 소득이 있거나 앞으로도 있을 것이 기대된다는 이유로 개인에 대하여 즉시 파산, 면책을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실패한 기업인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족쇄로 작용합니다. 그것은 파산제도의 이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글로벌 기준이 요구하는 바는 그것이 아닙니다. 2013년 4월의 맥킨지 보고서를 인용해 둡니다.

기업가정신이라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확신과 기업가로서의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이상을 요구한다. 즉 투자자와 실험자를 위한 "안전망(safety net)"을 제공하는 재무적 그리고 법적 환경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에서는 실패의 대가가 너무 비싸다. 그런데 실패라는 것은 대부분 실험과 도전의 결과이다. 기업인은 파산으로부터 다시 딛고 일어날 기회가 거의 없다. (A business owner has very little chance of rebounding from a bankruptcy)......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의 문화가 다시 뿌리 박기 위하여는 이전에 파산제도의 개혁과 강한 지적 재산권 보호가 먼저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현재 한국은 기업인을 위하여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업을 시작할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 중 43퍼센트가 실패가 두렵다고 답변하였다. 미국의 기업가들은 32%가 그렇게, 대만의 기업가는 38퍼센트가 그렇게 답한 것과 비교된다. 또 앞에서 말했듯이, 파산법과 파산에 관한 태도가 창업기업인에게 친화적(entrpreneur-friendly)이지 않다. — McKinsey Global Institute, Beyond Korean Style: Shaping a new growth formula, April 2013 p.67
http://www.mckinsey.com/insights/asia-pacific/beyond_korean_style

어쩌면 이것은 채권금융기관들이 자체적 신용회복 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또 법적 절차로서도 개인회생제도, 제2편 회생제도가 있으니 이들 절차에 먼저 따르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사고에 최근의 실무가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확신 없는 사회에 만연하는 점진주의적 도식입니다. 이것은 첫째 특정 부류에 속하는 채무자에 대하여 절차의 비용을 늘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인 채무자가 사업 운영을 계속하기 위하여 적기에 포기하지 않고 신용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태에 이르고 나서야 법적 절차에 이른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거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파산도 부정 당하고 제2편 회생절차는 아무것도 가진 것도 지킬 것도 없는 상태의 기업인은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둘째, 제2편 회생절차와 개인회생절차는 어느 것이나 채무자가 언제든지 청산형 파산절차를 선택할 가능성을 전제로 하여만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다. 채무자가 파산절차로 갈 가능성이 없다면, 채권자의 모르쇠 식 반대가 회생 절차를 좌절시킬 수 있고 이를 피하기 위하여 이행가능성이 희박한 회생계획안이나 변제계획안을 내거나 아니면 어거지로라도 이행가능성을 맞추기 위하여 채무자가 소득을 축소진술하게 할 유인이 큽니다. 이것은 제도의 타락을 결과합니다. 그것은 다시 제도에 대한 비난으로 돌아옵니다. 비정상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무자가 언제든지 파산을 신청하여 채무를 면할 가능성이 있다면 채권자로서는 개인 채무자가 내 놓은 회생계획(제2편회생의 경우) 또는 변제계획(개인회생의 경우)에 대하여 이의를 할 유인이 줄어들 것입니다. 즉, 파산절차에 의한 즉시 면책이 채무자의 권리로 시행될 때 제2편 회생, 개인회생은 채권자들의 협조에 의하여 순조롭게 운영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부동산재벌이던 도널드 트럼프의 예가 증명합니다. 개인파산으로 채권의 전액을 잃을 위험이 없었다면 그의 보증채무를 은행과 사채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조정해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의 빚 탕감에도 도덕적 해이는 안 된다며 비난하는 우리 현실에 당장 적용할 수 없는 문화라는 주장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업은, 아니 기업인은 강력한 보호를 받는 미국의 기업, 기업인들과 현실적으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법제 전체가 서양의 법제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피해자 인권 보호
금융피해자의 보호에 파산법정 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멸시효 제도도 있고, 채권의 추심 방법에 대한 규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채무자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채권추심자에게, “채무자에게는 전화도 하지 말고, 우편도 보내지 말라”고 하면 채권추심자는 본인에 대한 접근을 중단하는 것이지요. 많은 경우 이와 같은 규제만으로 채무자는 파산법정에 갈 필요가 없어집니다. 어차피 재산을 모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대부분의 근로계층이 아마도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사건을 적극적으로 맡으라
끝으로, 이들이 찾아왔을 때, 웬만하면 맡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파산법정에 의한 해결이든, 이를 전제로 하여 또는 이것이 불가능할 때 행하는 회피기동에 변호사는 아주 강한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변호사의 지속가능성에 보탬이 되게 하는 것이 국가의 과제이고, 또 변호사협회의 과제일 것입니다. 그것은 협회 차원에서의 소송구조의 제공보다는, 홍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쌀 장사 협회가 못 사는 사람에게 쌀을 무료로 주기 시작하면 상인들이 망할 것이듯이, 협회 차원에서의 퍼 주기는 정직하게 영업하는 변호사를 해칩니다. 이것이 브로커의 온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빚을 갚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이들을 보살피는 변호사들을 후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합이 살 길입니다.

전용모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