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재판부의 판결 소식을 전해 들은 소송의 원고인 응우옌티탄은 베트남에서 첫 소감을 이렇게 알려왔습니다. ‘승소 소식을 듣고 너무도 기뻤고 즐거웠습니다. 죽은 영혼들이 저와 함께 하여 저를 응원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혼들도 이제 안식할 수 있을 것 같아 저는 너무도 기쁩니다.’ 이 소감을 접하면서 나는 2018년에 베트남 전쟁의 민간인 학살 50주기를 맞이하여 퐁니·퐁녓 마을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베트남의 한 방송 기자를 만났습니다. 그 기자는 아주 준엄한 표정으로 내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군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구천에 떠돌고 있을 텐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나는 그 질문을 받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무 한 서린 질문이고 항의어린 표현이었기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 침묵하다가 더듬거리며 겨우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납니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너무 죄스럽고, 뭐라고 사과를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 드릴 뿐입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인 1968년 2월 12일, 퐁니 마을의 8세 어린 소녀였던 응우옌티탄은 한국군의 주민들을 향한 무차별 총격을 받고 복부에 심각한 총상을 입고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이 학살 사건에서 그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응우옌티탄 씨는 2015년에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 사회의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요구하였습니다. 2018년에는 베트남 시민평화법정의 증인으로서 증언대에 섰고, 2019년에는 청와대를 방문하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103인의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유가족의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2020년 4월부터 국가배상소송이 시작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대한민국의 책임을 인정하며 국가가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번 판결로 사법부가 내린 국가배상 판결은 우리가 타국에 가서 민간인에게 저지른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수용하겠다는 겸허하고 용기 있는 선언입니다. 이는 전쟁범죄에 관하여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적 통념을 우리 사법부가 수용한 양식 있는 판단이라고 생각되어 우리나라 역사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되리라 봅니다. 스스로를 가해자로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하는 일은 갈등 관계를 해소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가장 먼저 밟아야 할 첫 번째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과 베트남은 상당한 교역과 교류가 진전되어 베트남에 체류하는 한국인이 15만 명 있고, 또 한국에도 거의 비슷한 수의 베트남 사람들이 와 있습니다. 양국 간의 무역 총액은 급증하였고, 한류와 스포츠 분야의 교류도 활성화되어 친선관계가 크게 증진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비록 반세기 전 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의 영혼에 남긴 깊고 쓰라린 상처는 결코 아물거나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베평화재단 강우일 이사장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