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더라인] 이명박은 그때 왜 그랬을까

노무현 수사, 필요 없었는데 역사를 바꿨다 기사입력:2018-02-22 11:38:34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
다방면에서 조여 오는 수사의 결말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만 봐도 그의 인생에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얘기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청와대는 이 수사망의 뒤편에 자신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검찰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란 식이다. 하긴 영화 <더 킹>처럼 검사 집단을 권력의 동맹자로 보는 시선에서 보더라도 그런 일은 가능하다. 좀 더 자세한 사정은 훗날 후일담을 통해서야 흘러나올 것이다.

문제는 이 일련의 상황을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아무 감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냉소주의적 시선으로 볼 때, 사람들은 이것이 ‘정치 보복’이란 점에 대해 응당 동의할 지도 모른다.

핵심은 그렇더라도 동일한 냉소주의적 시선의 평가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금 보복을 당할 타이밍이다’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한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은 별로 할 말이 없다. <더 킹>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정치검사가 얘기했던 “반드시 보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 복잡한 정치 엔지니어링의 철학”(내용에 비해 쓸데없이 복잡한 말이지만)에 의거한 행동일 수 있다.

-노무현은 이명박에게 박하지 않았다

이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변명할 길이 없다. 또 한 번 냉소적 시선을 던진다면, 향후 ‘보복의 정치’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그가 보복을 당한 사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가 성립한다. ‘보복 정치의 청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난을 보고 난 뒤에 제 정치세력들이 필요성을 느낄 화제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한 일은 ‘보복’조차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문재인이 이명박에게 보복을 한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 말이 그럴듯하다고 볼 것이다. 이게 보복이 아니라 정의 구현이라 볼 그 지지층들조차도 심리는 유사하다.

그런데 이명박은 노무현에게 왜 그랬던 것일까? 이 점이 미스터리하고,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이명박은 참여정부 시절 해코지를 당한 바 없다. 실은 해코지는커녕 견제조차 없었다. 오히려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 업적을 쌓아 나가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 같은 경우 정부의 협조가 없었다면 임기 내 실현되고 치적으로 남기 어려웠다. 노 전 대통령은 별로 정파적 이해에 구애받지 않고 협조할 만하다 해서 협조를 지시했을 것이다. 청와대에서 그 결정이 났을 때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이하게도 야당의 잠재적 대권주자였던 이명박 서울시장의 치적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도 있다. 서울시 버스노선 개편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번호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고, 버스 색깔을 세 개로 정렬하고, 도심 대부분의 구간에서 중앙 차로를 통해 버스가 달릴 수 있게 하며, 환승시 요금을 두 번 내지 않고 거리에 따라 추가 요금이 정산되게 한 당시의 정책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봤을 때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당시엔 반대가 많았다. 이명박이 했던 일이었고, 시행 초반에 노년층이 바뀐 버스 번호를 외우지 못해 정책 저항이 있었다. 민주노총 소속 버스노조들이 시민 동의 없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이라면서 반발했다. 사실 정책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한국에서 정책 진행 속도가 비민주적이고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은 사실이며, ‘불도저 신화’라는 이명박의 캐릭터는 그 극점에 있었다.

그런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명박의 손을 들었다.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는데 이제는 잘 시행되고 있다. 개혁이란 것은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어쩌면 참여정부 말기 낮아진 지지율과 반대파들의 공세 때문에 지지부진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명박 서울시장은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나라당 소속이지만 정통파는 아니었기에 더 편하게 그런 식의 감정이입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명박, 원치 않은 길로 끌려가다

이후 이명박은 대통령에 당선된다. 여당 후보였던 정동영은 참여정부와 친노세력과 거리를 둔 채 대선을 치렀기 때문에, 그리고 격차가 너무 났기 때문에 딱히 선거 관리의 편파성을 논할 상황도 아니었다. 이명박에게 노무현은 질곡이 아니었고, 굳이 건드려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서부터 각을 세웠다. 훗날 나온 증언들을 모아보면 예전에 이미 합의가 된 사안을 건드려서 전직 대통령이 법규를 어긴 것처럼 몰아갔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결정적인 선을 넘지 않았다. 문제는 2008년 촛불시위 이후다. 중도층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이 정부가 처음에는 한나라당 주류와는 다른 ‘실용주의’ 정부처럼 굴다가 한쪽 이념으로 급격하게 경사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다.

이후 2009년에서 2010년까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문화계 좌익인사 색출로 대표되는 야권에 대한 강경 드라이브가 걸렸다. 그런데 이명박에게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정치평론적 시선에서 살펴봤을 때, 여기에는 이명박 개인의 캐릭터와는 다른 여러 정치주체들의 욕망이 투영됐을 거라 여겨진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전혀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보수파 정치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정권을 탈환하고 재창출하기 위해 그들을 수용했다.

그렇지만 말 위에 올린 다음에는 그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 했다. 이명박으로선 주인인 줄 알고 말 위에 앉았는데 말이 자기 의지와 다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식이었다. 처음에 어긋난 한 걸음은 누적되자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다.

민주정부 십 년 후 권좌에 다시 돌아온 보수세력은 정권 교체가 불가능해 보였던 1997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꿈꿨다. 최순실 일당은 거의 1987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민간인사찰과 국정원 기무사 등의 선거개입 논란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했다.

‘노무현 손보기’가 그 플랜에서 보더라도 합리적인 행위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당시 보수 본류의 다수파가 참여정부 세력에게 빈정이 상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들은 ‘깜도 되지 않는데 국가를 농단했던’(그들 시선으로) 그 그룹을 손봐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을 것이다.

-보수정치의 누적된 선택의 총합의 풍경

역사는 역설로 가득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이전 친노는 폐족이었다. 참여정부 말기의 풍경은 스산했고 그렇기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본인 표현으로 ‘역사상 없었던 지지율’로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그 수사가 모든 것을 바꿨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죽음은커녕 구속조차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 정두언 등의 증언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의 욕망과 가치체계에 비추어 타인도 이해하고자 한다. 수치심을 느낀 전직 대통령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건 그들의 예상범주 밖이었다.

이후 이명박의 모든 스텝이 꼬인다. 그는 박근혜를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더 최악이라 여겼을 테고, 참여정부의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무심하게 다음 대선을 바라볼 수 없게 됐다. 친이계 대선후보를 띄워보려는 모든 시도가 좌절된 이후엔 박근혜를 차기 주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 경선에서 나온 발언들을 종합해 볼 때, 이명박은 국정농단의 가능성까지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가보단 자신의 안위가 소중했다. 기업가 출신으로 무슨 일을 벌이든 동업자들과 정산을 잘했던 그는 후세에 나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당대에 비리가 드러나기는 쉽지 않은 이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지명해야 했던 후임자가 최악이었다. 제대로 해먹지도 못해 배탈로 데굴데굴 구를 이들이었고, 검찰 수사가 들어가면 잡힐 수밖에 없는 흔적을 흩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임기만 지켰더라도 이명박은 다스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바꾸는 작업을 솜씨 좋게 마무리지었을지도 모른다.

가지 않아도 될 길을 등 떠밀려 조금씩 걸어간 결과가 지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서도 복잡한 심경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보수파가 정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단단해 보였던 콘크리트 지지층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것은 결국 그들의 보신주의적 선택의 누적이 가져온 대가였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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