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이 지난 지금, 미디어 시민은?

[촛불 1주년과 미디어 시민-마지막] ‘미디어 시민’은 향후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 나갈까 기사입력:2017-12-05 10:54:19
*촛불혁명 1주년이라 한다. 지난해 10월말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본격적으로 점화된 후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12월의 국회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올해 3월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이끌어냈다. 1주년을 맞아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진행 중이다. 로이슈는 그중에서 ‘미디어 시민’이란 개념으로 지난 이십여 년을 반추한 한윤형 저 <미디어 시민의 탄생>의 후반부를 그간 소개했다. 박근혜 정부 탄생에서 몰락까지를 다룬 3개장을 9회에 걸쳐 연재했다. 끝으로 일 년이 지난 시점에서 저자에게 소회를 물어보았다.

지난 연재에서 일부 소개한 《미디어 시민의 탄생》(시대정신연구소, 2017년)은 졸저 《안티조선 운동사》(텍스트, 2010년)의 개작판이었다. 처음엔 개정을 의도했지만 ‘미디어 시민’이란 개념을 떠올리고 이를 토대로 재서술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개작이 되었다.

네 번째 대규모 광장 촛불시위(2016년)를 경험하고 박근혜 정부가 몰락하며 대선이 치러지는 광경을 머릿속에서 복기하며 지난 이십여 년을 재서술했다. 그렇기에 부제는 <21세기 미디어 운동의 흐름과 영향>으로 달렸다. 그 결과 2010년의 책이 매우 반성적이면서 비관적이었다면, 2017년의 책은 역시 만만치 않은 여러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다소 희망적일 수 있게 되었다.

여는 글을 다시 들춰본다.

“(...) 이 책에서 말하는 ‘미디어 시민’이라는 말은 요즘 유행하는 말인 ‘미디어 리터러시’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본인의 견해가 미디어 지형도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이해하며, 미디어의 견해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표시와 항의를 할 줄 알고, 뉴미디어를 통한 개인의 미디어 실천까지 가능한 시민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이들의 숫자가 아주 많지는 않겠지만, 이 정의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변동시켰다는 것이 이 책의 인식이자 주제다.

이 책이 본격적으로 다루는 시기는 1995년부터 2017년까지의 이십 년이 약간 넘는 시간대다. 미디어 운동과 연쇄적인 뉴미디어의 탄생과 영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 기간 동안 해당 조류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기록하고 싶었다. 이 기간 동안 닥쳐온 뉴미디어 조류만 해도 PC통신(1990년대 중반),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의 이동(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제로보드 게시판을 기반으로 한 정치 토론 커뮤니티 성립(2000년~2004년), 개인 블로그 번성과 블로고스피어 생태계 구축(2003년~2007년), 취향 커뮤니티들의 정치·사회 게시판 신설(2008년), 트위터의 유행(2009년), 페이스북 유행(2010년대) 등이 있다. 시사 이슈를 주도하는 매체도 이 기간 동안 신문·잡지에서 지상파 방송으로, 지상파 방송에서 인터넷 포탈과 종편 방송 등으로 변했다. 이러한 미디어 변동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 및 사건과 어우러져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각각의 조류와 매체 변동은 그 매체에 어울리는 텍스트 작성법과 그 작성법에 영향을 받는 주체를 만들어 냈다. 또한 이러한 미디어 변동이 만들어 낸 주체의 변화는 온라인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매체의 변동에 따라 그 매체들이 오프라인으로 사람을 끌어내는 방법 역시 변화했다. 2016년 광장에서 ‘대통령 탄핵’을 외친 시민들도 그 영향 안에 있었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p6~7)“

역설적으로 이 가설에 대해선 정권이 바뀌고 난 이후 사람들이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주류 언론사는 정권을 무너뜨리고 교체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JTBC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구성원이라면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자마자 일군의 문재인 지지자들이 《한겨레》 등 몇몇 진보언론과 각을 세우고 《한겨레》를 ‘세게 때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그 과정에 있었던 개별적 행위의 시시비비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동안 미디어 환경과 시민들이 정치의식을 구성하는 방식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기자들은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볼지 몰라서 분주했는데, 언론학자들을 포함한 몇몇 이들은 기자들이 이제야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자체가 언론이 얼마나 지체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평하기도 했다.

나는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주류언론과 미디어 시민의 연대로 가능했다고 썼다. 그러나 연대라는 건 매순간의 이합집산이나 합의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지 늘상 존재하는 사태는 아니다.

하물며 오늘날의 미디어 시민들은 주류언론에 대해 과거와 같은 수준의 신뢰가 없다. 그런 환경에서 진보언론만 그 지지자들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문의해 본 바에 따르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역시 2016년 말 이후 발행부수가 유의미하게 줄었다고 한다. 문재인 지지자 중 일부가 진보언론을 불신한다면, ‘태극기 시위’를 지지했던 보수적 시민들 역시 조중동을 불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 역시 뉴미디어의 탄생에서 비롯된 영향이면서, 어느 정도는 이 책에서 분석한 21세기 미디어 운동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 말하자면 ‘미디어 실천’과 ‘미디어 운동’의 구별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21세기 초만 해도 미디어 운동이란 미디어와 미디어가 아닌 것의 구별이 굳건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행동이었다. 미디어 바깥에서 시민들이 주로 소비자 행동을 통해 미디어에 압력을 넣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압력이 일종의 미디어 행동 내지 실천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팟캐스트 방송, 영상물 제작, 영상물을 유튜브나 페이스북으로 유통하기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한 일종의 대항언론을 넘어 본격적인 대안언론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도 있다. 십오 년 전엔 《오마이뉴스》 역시 그런 방식으로 뉴미디어를 활용한 대안언론이었으나, 이제는 구닥다리 주류 언론으로 취급된다.

뉴미디어 활동은 그 매체가 혁신하고 진화하면 할수록 일종의 ‘인지의 파편화’를 가져온다. ‘필터버블’이니 ‘가짜뉴스’니 하는 말들이 지칭하는 현상이다. 소설가 장강명이 한국일보 지면에서 ‘신문의 종말’을 선언한 것처럼 공통의 것들을 다루던 사회적 감각이 소멸하고 있다. 사실 한국 사회는 신문 역시 제대로 공론을 형성해본 경험이 빈약하기에, 현재는 구미 선진국과 비슷한 뉴미디어 문제를 겪고 있지만 모범 삼을 만한 과거를 소환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여러 모로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편향이 생기면 저항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각 언론사엔 ‘팩트체크’ 프로그램이 자리잡았다. JTBC의 ‘팩트체크’가 선도했지만,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이 없이는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대안언론 영역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보통 뉴미디어가 세상을 휘저으면 이 미디어를 활용한 민중적인 미디어 실천, 정파적인 미디어 실천이 나타나고 각 정파가 모두 들어와 아수라장이 펼쳐질 때쯤 이 미디어의 고유한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시도들이 나타난다. 팩트체크 프로그램의 번성은 어쩌면 그 시도의 단초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는 글에서 이렇게도 썼다.

“(...) 2016년 연말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지나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은, 정치에 갑자기 관심을 기울이게 된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한 정치적 당파의 서사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편협함을 체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한두 달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십수 년의 역사를 간결하게 단순화한다. 일종의 인터넷제 ‘패스트푸드 이데올로기’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단순화의 풍랑에 휩쓸리는 것을 막는 데에 이러한 저술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p9)”

주류 언론이 불신되는 데에도, 여러 종류의 미디어 실천이 이루어지게 된 데에도, 순기능과 악영향이 있다. 결과적으론 그것을 진단하고 폐해를 막거나 덜어보려는 실천이 또 다시 생길 것이다. 개인들이 모이고 단체를 만들거나 제도 변혁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주류 언론사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기존의 미디어 문법을 처음부터 재검토하는 식의 근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술 말미에 닫는 글에서 주문한 것이 여전히 유효해진다.

“(...) 그보다는 각자가 주어진 매체를 통해 어떤 종류의 가치를 실현하고 규율을 따를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더 유효할 수 있다. 이 책 본문의 주요 내용들에서 《조선일보》 등에게 적용했던 그 규율, 가령 공정성과 당파성의 문제를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 ‘필터 버블’이나 ‘가짜뉴스’를 양산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아닌지를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 물론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며, 기술적이고 제도적인 해결 방법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들을 고민하는 개인들의 연합이 없다면 기술적이고 제도적인 해결 방법 자체가 고민될 수가 없다. 언론사의 경우 기술이든 제도든 자사의 이윤추구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고민들이, 각자 시민들에게 그러한 미디어 실천윤리를 길러줄 수 있다면 나로선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될 것이다.“(p536)

시간이 흐르고 변화가 누적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의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