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민, 민심을 천심으로 만들다

[촛불 1주년과 미디어 시민⓽] 한국의 대중 집회는 어떤 방식으로 박근혜를 끌어내렸나 기사입력:2017-12-01 09:32:40
*촛불혁명 1주년이라 한다. 지난해 10월말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본격적으로 점화된 후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12월의 국회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올해 3월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이끌어냈다. 1주년을 맞아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진행 중이다. 로이슈는 그중에서 ‘미디어 시민’이란 개념으로 지난 이십여 년을 반추한 한윤형 저 <미디어 시민의 탄생>의 후반부를 소개한다. 박근혜 정부 탄생에서 몰락까지를 다룬 3개장을 9회에 걸쳐 연재한다.

22장 2016년, 네 번째 대규모 광장 촛불이 끌어내린 보수정부 (3)

또한 이들은 철저하게 ‘미디어 시민’이었다. 가령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백만 촛불 파도타기’ 광경을 생각해보자. 시위 현장에 있을 때 이 퍼포먼스는 큰 의미가 없다. 이 퍼포먼스는 공중시점의 카메라로 찍어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감동적이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는 세계인들도 찬탄했다.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은 사실상 자신의 눈뿐 아니라 카메라의 눈으로 사태를 인지했다. 운동 세력이 설치한 무대와 스크린이 그 부분을 도왔다. 카메라에 잡히면 저렇게 멋있게 나올 거란 걸 추측하고 사람이 많은 빡빡한 공간에서 당장 자신의 눈으론 지각되지 않을 스펙터클을 위해 ‘파도타기’에 동참했다. 스마트폰을 쳐다보면서 시위에 참여하면 실시간으로 몇 명이 모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위대 숫자가 충분치 않다 싶으면 친구들을 호출했다.

이런 현상은 2008년 촛불시위에서도 이미 나타난 바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아직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위 정보를 얻고 나왔고 시위에 나와서는 서로 간에 문자로 시위 현황과 경찰의 위치를 확인하고 경찰을 피해서 행진했다.

당시 사람들을 이끌어낸 인터넷 커뮤니티는 다음 아고라뿐 아니라 영화·스포츠·게임·화장품·성형 커뮤니티 등 취향 커뮤니티 전반이었다. 갑자기 정치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 커뮤니티들에 우후죽순처럼 정치·사회 게시판이 생겨난 상황이었다. 당시 진보 언론은 그들에 대해 찬탄하며 ‘웹 2.0세대’라고 칭했다. 그렇게 개념을 남발하자면 ‘웹 3.0’, ‘웹 4.0’하며 끝도 없이 세대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판이다.

진중권은 이 시기 진보신당 칼라TV의 리포터로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면서 다시 한 번 대중적 지식인으로 거듭났는데, 당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역매개’란 언어로 표현했다. 방송을 보는 시민들은 리포터인 자신이 마치 게임 캐릭터인 것처럼 이런저런 명령을 내렸고 그는 그것을 수행해야 했는데, 더 새로운 매체인 게임의 문법이 기존 매체인 방송에게로 투입된 이 상황을 그는 ‘역매개’로 보았다(진중권, <개인방송의 현상학>, 《문화과학》 55호 2008년 가을, 170~181쪽 참조). 그는 미디어가 세상을 바꾸고 있음을 이해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이처럼, 2008년 촛불시위에도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몰려나온 시민들이 문자로 정보를 공유하고, 나오지 않은 이들은 실시간 방송을 시청하며 의견을 주는 식의 미디어 활용이 두드러졌다. 물론 모두가 스마트폰을 든 2016년의 시민들은 그 이상이었다.

2008년과 2016년 촛불시위에서 있었던 ‘미디어 시민’들의 지나친 비폭력의 강조에 불편해 하는 좌파들도 있었다. 물론 모든 시위를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의 시위는 상황과 성격을 볼 때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들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권력기관에게 헌법에 정해진 바대로 체제를 정상화하기를 명령하기 위해 나왔다. 비폭력과 장내 정돈은 그들이 자기규율을 가질 수 있는 주권자임을 증명했고, 그러지 못했던 방탕한 권력기관들에 대한 경고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데에 운동 세력도 기여했다. 수많은 인원이 쏟아져 나왔는데도 안전사고조차 최소화된 것은 그들의 공로가 있었다. 이 정국에서 인명 희생은 그러한 조율을 거치지 못했던 태극기 집회에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박근혜 파면 선고 이후에 나왔다.

결국 12월 3일의 정부 수립 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 집회는 다른 생각을 하던 국회의원들이 민의를 따라 행동하게끔 만들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과 2017년 3월 10일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박근혜 파면 선고가 그렇게 가능했다.

그렇게 십 년 보수정부를 끌어내린 2016년의 촛불은 시민과 운동 세력이 서로를 존중하여 최대의 성과를 이끌어낸 집회가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호 적응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2016년 시위 현장에 나온 운동 세력의 인력들은 2008년의 그들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운동 세력은 재생산에 실패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자제력을 발휘했지만 향후에도 조직 세력과 잘 지낼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였다.

‘미디어 시민’들은 이 책 본문에서 종종 서술되었듯 노동계나 지역 정당 조직 등 시민들의 정치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간 단체들과 갈등하는 양상을 보였다. ‘미디어 시민’이 그들끼리만 소통하면서 만족하는 소통의 폐쇄회로에 빠질 때, 그들은 정치적으로 쉬이 무력해졌다. 2007년 대선 때 블로고스피어의 시민들은 ‘내 주위엔 이명박 지지자가 하나도 없어서 여론조사를 못 믿겠다’고 투덜댔다.

물론 선거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미디어적 시민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그들만으로 모든 걸 이룰 수 있다는 만능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나꼼수는 분명히 의미있는 매체였으나 거기에만 집착한 민주당이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2016년의 시민과 운동 세력은 2000년 이후의 여러 경험들의 축적에서 나온 이들임이 분명했다. 미디어 운동의 흐름도 그런 이들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그 자체로 높이 평가받거나 경멸될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모이게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겠으나, 이러한 모임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지 여부는 또 별개라고 봐야 할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많은 진보 지식인들은 그 시민들을 현란한 담론의 단어로 치장하며 상찬했다. 하지만 당시 유통됐던 ‘광우병 괴담’이 과장됐던 것으로 드러나자 이제 생활세계의 시민들은 2008년 시위에 대한 언급 자체를 자제한다. 다만 우익들만이 ‘광우뻥 시위’의 허구성에 대해서 길게 논한다. ‘미디어 시민’은 점진적으로 구성되었지만, 어떤 진보 지식인들이 믿는 것처럼 한 번의 정치적 사건을 통해 새로운 주체가 구성되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한국인들의 집단 행동의 역사를 좀 더 긴 문맥에서 탐구하는 이들도 있다. 박훈 서울대 교수는 적어도 조선 후기 때부터의 역사가 지금의 한국인의 심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본다면 유신과 5공 시절 왜곡되었던 시위가 정상화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혹은, 사대부가 주로 정치에 참여했던 조선시대와 지금의 차이가 만들어 낸 대중 집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 한국의 시위규모에 일본인들이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세기 일본 최대 시위라는 1960년 안보투쟁 때 도쿄에 모인 수는 주최 측 추산으로도 30만 명을 웃돌 뿐이다. 그 후 최대 시위였던 2015년 안보법안 반대 시위도 10만 명 정도였다. 도쿄 인구는 이 기간에 내내 1000만 명 안팎이었다. 또 일본 전체 인구는 한국의 2.5배에 가깝다(남북한 인구의 2배 정도. 사실 이 비율은 조선 후기=도쿠가와 시대부터 그러했다). 시위 참가 인원수라는 게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인구가 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한국에서, 일본의 몇 배 규모의 시위가 번번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경제사에서는 동조율(同調率)이라는 말이 있다.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변동이 다른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높을수록 그 사회의 경제적 동조율은 높은 것이 된다. 경제의 상업화 정도가 약했던 조선은 같은 시기 도쿠가와 일본에 비해 경제적 동조율이 낮은 사회였다. 그러나 ‘정치적 동조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중앙정계에서 이슈가 불거지면, 전국 각지에서 수백, 수천통, 때로는 만단위의 상서가 올라오는 조선의 ‘정치적 동조율’은 단연 두드러진다. 지금의 한국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런 사회이기에 한국은 여전히 ‘민심’이 세상을 지배한다. 민심이란 말은 일본어에도 중국어에도 있지만, 일상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하물며 우리처럼 정치적으로 막강한 힘을 갖는 어휘도 아니다. 한국인들이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을 이렇듯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것을 알면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아마도 놀랄 것이다.

그 민심은 지금도 여론조사와 군중집회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중이다.(박훈, <민란 없는 일본, 민심의 나라 한국>,《 경향신문》, 2017년 3월 9일자)

‘민심은 천심’이란 말은 중앙 정치의 향방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들 각 개인의 판단의 집합적 총합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고, 막상 결과가 나오면 매우 교묘하기 때문에 자주 쓰이게 되었을 것이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그 ‘천심’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 책에서 서술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미디어-시민’이 있었다.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