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무정자증 불임, 임신가능 여부는 혼인취소 사유 아냐”

“임신가능 여부는 민법상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기사입력:2015-03-04 16:53:23
[로이슈=신종철 기자] 남편이 정상적인 발기와 사정이 돼 부부 성생활에 문제가 없었다면 비록 무정자증 불임이 있더라도 이를 이유로 혼인을 취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임신가능 여부는 민법상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에 따르면 교사인 A(여)씨와 의사인 B씨는 중매로 만나 2011년 1월 결혼했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자 그해 9월 B씨가 병원에서 불임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 남편의 ‘무정자증’이 확인됐고, 염색체에 선천적 이상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에 B씨는 검사결과가 정확한지 확인하고 불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 2곳에서 염색체검사와 고환 조직검사 등을 받았다. 검사결과는 안 좋았다. 두 사람은 모두 아이를 갖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검사결과를 알고 난 후 크게 상심했다.

그 후 B씨는 아내에게 아이를 갖기 위한 방법으로 형의 정자를 이용해 인공수정을 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A씨가 거절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이 깊어졌다.

그런데 B씨가 7세 무렵과 2009년경 자전거를 타던 중 부상을 당해 비뇨기관에서 수술을 받은 적 있어, A씨는 남편의 불임사실을 알고 이런 과거 병력과 의사인 남편이 처음부터 불임을 알면서도 숨기고 자신과 결혼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A씨는 남편에게 원망과 서운한 감정을 나타냈고, B씨는 그러한 아내에게 실망과 분노를 느껴 서로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2011년 12월 두 사람이 이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 화가 난 B씨가 아내의 목을 조르고 어깨를 누르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결국 B씨는 2012년 6월 아내와 다툰 후 집을 나갔고 현재까지 별거 중이다.

이에 A씨는 “남편이 자신의 성기능장애를 속이고 결혼했으므로 민법 제816조 제3호의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하거나, 혼인 당시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이 있음을 알지 못했으므로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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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심 “혼인취소 사유 아냐”

1심인 창원지법 제2가사부(재판장 홍창우 부장판사)는 2013년 5월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혼인취소 청구소송에서 혼인취소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혼인파탄의 책임을 B씨에게 물어 “A씨와 B씨는 이혼한다”, 또 “B씨는 A씨에게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혼인 전에는 자신의 성기능 장애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원고와의 혼인 이후 불임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의 성기능 장애사실을 알게 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또 “B씨가 무정자증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런 생식불능 증세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혼인취소 사유인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혼인 파탄과 관련, 재판부는 “A씨의 본소와 B씨의 반소로 서로 이혼을 원하고 있는 점, 두 사람의 별거기간이 상당함에도 별거 이후 관계회복을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점 등에서 혼인관계가 파탄났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의 질병 및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충격을 받았을 원고의 심경을 이해하고 위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형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을 제안하는 외에 원고와의 관계회복을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오히려 원고와 각방을 사용하고 대화를 회피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항의하는 원고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일방적으로 집을 나온 점 등을 참작하며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은 피고에게 있다”며 위자료 책임을 인정했다.

◆ 항소심 “혼인취소 사유”

항소심인 부산고법 창원제1가사부(재판장 윤종구 부장판사)는 2014년 1월 A씨의 혼인취소 청구를 받아들였다. 위자료는 1심과 같이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는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중매로 만나 혼인했는데, 이 경우 배우자 일방은 상대방의 직업이나 경제적 능력은 물론이고 2세에 대한 기대(출산가능성과 최소한 정상적이거나 보통의 유전자를 가진 2세에 대한 희망)를 중요한 선택 요소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피고의 성염색체 이상증은 설령 향후 원고와의 성교나 임신이 가능하더라도 2세에게까지 유전될 가능성을 불식하기 어려운 점,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 혼인 무렵부터 현재까지 일반적인 부부 사이에 필요한 성생활이 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감안할 때, 원고가 혼인 전에 고고에게 이런 사유가 있음을 알았더라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피고에게 혼인 당시부터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었음에도, 원고는 이를 알지 못한 채 혼인신고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고, 이는 민법 제816조 제2호의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대법원 “혼인취소 사유 아냐”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또 달랐다. 대법원은 민법에서 정한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적 기타 중대한 사유’를 엄격하게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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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초동대법원청사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A씨가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취소 청구를 받아들인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2014므4734)

재판부는 “혼인은 남녀가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도덕 및 풍속상 정당시되는 결합을 이루는 법률상, 사회생활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신분상의 계약으로서 그 본질은 양성간의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인격적 결합에 있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신가능 여부는 민법 제816조 제2호의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관한 민법 제840조 제6호의 이혼사유와는 다른 문언내용 등에 비추어 민법 제816조 제2호의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는 엄격히 제한해 해석함으로써 그 인정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가 불임검사 이후 자신의 무정자증임을 알았으나 특별한 의료적 시술 없이 통상적인 방법으로 여러 번 정액검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발기능력과 사정능력이 문제되지 않았고, 그 사이 원고는 성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유로 피고와 함께 병원진료를 받거나 친정 부모 등에게 알려 고민하지 않았다”며 “사정이 이와 같다면 원고의 부부생활에 피고의 성기능 장애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봤다.

또 “설령 피고가 원고에 대한 상대적인 관계에서 성기능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들어 피고에게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병원장의 피고에 대한 신체감정 중 2회에 걸쳐 생리적 반응을 검사한 ‘야간수면발기검사’에서 정상범위의 결과가 나타난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약물치료, 전문가의 도움 등으로 개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피고에게 성염색체 이상과 불임 등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들어 민법 제816조 제2호에서 정한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은 민법 제816조 제2호의 혼인취소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한편, A씨는 혼인취소 소송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이혼소송도 함께 청구했다. B씨도 A씨를 상대로 이혼소송 반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 1심과 2심은 혼인파탄은 인정해 이혼을 판결했고, 대법원은 혼인무효 부분에 관해서만 판단했으로, 파기환송심에서는 혼인무효에 관한 부분만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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