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금강산 댐 착공 시기가 아웅산 폭파사건이나 KAL기 격추사건과 같은 적대적 도발이 감행되던 시기였던 점도 맞아떨어졌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이같은 위기감 조성은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평화의 댐 건설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상당수가 날조된 정보로서, 대북공세와 국민경각심 고취에 이용한 산물이었다. 실제 금강산 댐의 규모는 많아도 59.4억 t 으로 그 위협은 3배 이상 과장된 것이었던 것.
이후 금강산 댐이 최대치인 59.4억 t의 상태에서 물을 방류해도 서울 한강변의 일부 저지대만을 침수시키는 정도의 위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평화의 댐은 1987년 2월 28일 착공해 1989년에 1단계 댐이 완공됐다.
전여송 로이슈(lawissue) 기자 arrive71@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