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조선의 흥선대원군 정권은 이 사건과 같은 해 10월 26일(음력 9월)에 일어난 프랑스 함대의 침입 사건인 병인양요를 계기로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강화하게 됐다. 그리고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은 1865년 미국 링컨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후 권력을 승계받은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탄핵 등 어수선한 미국 국내 사건으로 바로 처리되지 못하고 5년 후 1871년 신미양요의 원인이 됐다.
한편으로는 대동강에 침몰한 제네럴 셔먼호를 인양하여 이를 복제, 철갑증기선을 건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수십만 냥을 들여 10개월 만에 복원하기는 했으나, 아주 느리게 움직여서 사실상 실패했다. 그러나 그 뒤에 통상수교거부 정책이 한창임에도 증기선을 만들든지 구하든지 하라는 상소가 빗발쳤다고 전해진다.
전여송 로이슈(lawissue) 기자 arrive71@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