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 미국의 무상 원조가 줄게 되었고 무리한 개헌 등으로 부정부패가 심해지자 자유당에 불리한 여론이 생기게 된 것이다. 결국 이에 분노한 자유당은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자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그의 측근들이 내무부 관료들과 자유당 소속 정치 폭력배 이정재, 임화수 등을 동원해 부정 선거, 개표 조작을 감행한 것.
부정 선거가 폭로되자 각지에서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부정선거를 시위하던 학생들 중 김주열 군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화장된 유골이 마산 앞바다에 유기되면서 후일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선거는 결국 국회에서 무효 처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승만과 이기붕은 각각 대통령직과 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정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