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태 국회의원 “당의 권력을 당원들께 돌려드리겠다”

기사입력:2019-01-12 10: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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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중진 조경태 국회의원이 당대표 출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로이슈 전용모 기자]
2월 27일 치러질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조경태(4선·부산사하구을) 국회의원의 캐치프레이즈는 “당의 권력을 당원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이다.

조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인물이 부각되는 반면 자유한국당은 낡은 인물, 흘러간 인물이 계속 리마인드 돼 국민들이 봤을 때 자유한국당에 대한 희망을 못 얻는 것 같다, 새로운 인물이 부각이 돼 국민들한테 좋은 시선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희가 전당대회를 통해서 해야 될 일 중의 하나가 새로운 인물을 키워야 됩니다. 그 사람이 전국적인 인물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전대를 통해서 새로운 인물이 부각이 되고 탄생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또 당 대표 권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대표의 권한을 자기중심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게 많이 보인다. 이건 낡은 사고다. 국가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듯이 당의 권력은 당원들한테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원증 발급해서 당원의 위상 최대한 존중하고 높여줘야
◇당 대표의 능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마음 강함에 있어


조 의원은 구체적인 실천방안중의 하나로 당원증을 발급해서 당원의 위상을 최대한 존중하고 높여줘야 되겠다는 것에서 출발하겠다고 했다.

“일단 우리 중앙당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고 당원들이 당사에 들어가려고 해도 경찰이 막는 등 출입이 부자연스럽다. 이건 주인인데 주인행세를 못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당의 주요한 정책이나 결정사항을 논할 때는 당원들한테 뜻을 물어보고 당원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그런 문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민주적인 정당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보겠다는 생각이다.

“당 대표로 나오겠다는 분들 중에 국민들한테 귀에 쏙 들어가거나 감동을 줄 수 있는 법안을 제대로 발의한 분이 별로 없잖아요. 자기의 조직력을 갖고 대표를 하려고 하시는데 당 대표는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 능력의 의미는 얼마나 국가와 국민을 위한 마음이 강하냐는 의미입니다.”

조경태 의원은 원내 중에서 당 대표를 하는 것이 당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이번에 당 대표는 원내에서 해야 됩니다. 그래야 힘을 받을 수 있거든요. 원외의 당 대표는 아무래도 힘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국회라는 공간속에서 정치가 돌아가기 때문에... 과거 박희태 전 대표님도 원외의 설움을 경험하셨던 것 같다. 대표직을 사임하시고 원내로 진입하신 걸로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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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용모 기자)

◇전기요금누진제 완화시키는데 앞장 자긍심 갖고 있어


조 의원은 며칠 전에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경북 청도 신도리에 가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 졌는지 역사적 현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새마을운동이 가지고 있는 가치 중의 하나는 새마을운동이 곧 경제성장과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경제가 어렵지 않습니까. 제가 당대표가 되면 첫 방문지로 새마을운동발상지에 우리당원들을 모시고 우리가 한 번 경제 살리기를 위한 정당으로서, 정부여당이 못한다고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제가 당 대표가 돼서 첫 번째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경제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는 정당’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그는 “스스로 국회의원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 중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내용이 있었지만 보람된 것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전기요금누진제를 완화시키는데 앞장섰다’는데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다.

“전기누진제 그것 때문에 국민적 분노와 고민이 있었잖습니까. 저는 18대, 19대, 20대 전기누진세에 관한 법안을 계속 발의했습니다. 고무적인 것은 정부가 국회에서 하는 움직임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전기요금폭탄에 대해 정책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는 국민들이 노심초사 했던 전기요금누진제가 개선은 됐지만 대표가 되면 좀 더 개선해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도록 정책을 펼쳐나가겠다는 의지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비전 제시…‘3차 산업’과 ‘우주산업’…청년창업 전국투엉 최초 국회의원

특히 젊은이들(청년) 일자리문제에 대해서는 수년전부터 청년창업에 대해 전국투어를 했던 최초의 국회의원이 그다. 이렇다보니 청년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도 있지만 청년들한테 기회가 주어지고 발전가능성이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해야 되는데 지금 정부여당에서는 아직까지는 우리사회가 청년들이 새로운 꿈이 가지기에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청년들에 대한 일자리 문제를 몇 가지 부분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첫 번째는 ‘서비스발전법’을 통과시켜야 된다는 것.

젊은이들에게 꿈과 비정을 제시해야 되는데 ‘3차 산업’과 ‘우주산업’이 그것이다. “이것을 제가 당대표가 되면 아주 가열 차게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1차, 2차 산업은 성장이 많이 돼 있다. 특히 제조업분야는 세계 5위정도 된다. 정부여당이나 정치권에서는 제조업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하고 있다. 제조업분야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뒤떨어져 있는 부분에 기회가 있는데 이분야가 ‘3차 산업’이다.

일본이나 영국,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비중이 낮다. 3차 산업을 획기적으로, 과거에 새마을 운동 하듯이 5개년, 10개년 계획을 통해 서비스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수 십 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미 데이터에도 나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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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대표가 된다면 젊은이들 일자리 창울을 위해 3차선업과 우주산업을 가열자체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외청인 ‘우주청’ 만들어 젊은이들 참여시켜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선진국의 모델은 3차 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가야되고 또 한 가지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준비가 안 돼 있다.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안 한다. 하기는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목표점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조 의원은 많은 식자층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 4차 산업의 종착지, 목표지는 바로 여기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그러면서 취재진에게 “4차 산업의 목표지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인공지능(AI), IT, 빅데이터 얘기를 하지만 4차 산업의 종착지로 조경태가 생각하는 것은 ‘우주’였다.

“우주와 관련된 산업을 우리는 빨리 진행시켜 나가야 된다. 우주산업은 첨단산업이다. 로봇이 들어가야 되고 빅데이터, IT가들어가는 총화이다. 우주산업을 미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이나 EU나 다 거기에 집중돼 있거든요. 우리가 다소 늦었지만 외청인 ‘우주청’을 만들어서 여기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참여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된다는 것이죠.”

그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사람은 두뇌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세계 1위 반도체를 대체할 만한 미래 산업이 바로 우주산업이다. 이것을 빨리 정부여당이 캐치해서 나아가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오히려 IT기술이 중국에 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구를 위해 가장 잘했다고 한 것은 신평-장림-다대간 지하철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지하철과 해수욕장다운 다대포해수욕장을 만든 것이었다고. 그게 가장 보람 있었다고 소개했다.

◇가난한 고학생 조경태…부산 자갈치 지게꾼 아들

그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작고한 그의 부친은 자갈치 지게꾼이었다. 현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싶다고 할 정도였다.

1968년 경남 고성 출생으로 부산 신평초등학교(12회), 부산사하중학교(11회), 경남고등학교(40회)를 거쳐 부산대 및 동대학원(토목공학 박사)을 졸업했다.

고학생이 의미하듯 학비를 벌기위해 학창시절 내내 학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조선소에서 추운겨울에 페인트질이나 녹을 닦아내는 사포질도 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새전과를 사 본적이 없었다. 새전과를 부모로부터 받아보는 게 소망이었던 아이였다. 그런데도 한 번도 세상을 원망해본 적이 없다는 그였다.

“아버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사셨을 텐데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연탄이 없는 가정에 몰래 도와주거나 어르신들에게 탁주를 대접하면서 말동무도 해주는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제3자로부터 듣고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저는 우리사회의 정의로움과 민주주의를 위해 데모도 많이 했다. 한 가지 알아주셔야 할 것은 제가 학생운동, 데모를 했던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발전을 위해서 했지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데모한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이게 우리사회 지식인들이 깨달아야 될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부친은 가진 것은 없지만 덕을 많이 쌓은 분이다. 모친은 평범한 우리사회의 어머니시다. 자식들한테 헌신적이고 현재도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시는 분이다.”

조 의원은 4형제 중 3째다. 형제들이 희생 덕에 대학에 간 사람은 조 의원 혼자다. 그래서 지금도 늘 마음속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묻어있다. 자녀가 몇인지를 물었다.

“장남은 자녀 2명, 차남도 2명, 막내는 3명, 저는 한명이지만 평균 2명으로 국가에 충성했다 생각한다”며 활짝 웃었다. 대학원 시절 집사람을 만났다. 사서공무원을 한 아내는 조 의원이 정치를 하면서 그만뒀다고 했다. 강직한 여성이며 여성인권에 대해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지 무난하게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내조덕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2008년부터 부산시택시운전사업조합 명예택시기사다. 그래서일까. 택시운전기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부족하고 소외된 분들을 위한 정책이 많이 나와서 빈부의 격차를 줄어나가야 된다는 생각뿐이다. 정신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고.

◇노점상 단속에 울부짖던 상인들을 보면서 정치하겠다고 다짐…만28세에 국회의원 출마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그가 정치를 한 배경은 이렇다.

박사과정에서 대학 강사로 있을 때 부산 구포시장을 지나치는 길에 상인들(어머님들)의 울부 짓는 소리가 나서 길을 가다 멈춰 섰다. 노점상 단속반이 물건을 모두 압수해 싣고 가는 것을 보고 “왜 단속만 하면 되지 물건은 왜 압수해 가느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자 하는 말이 “학생인 것 같은데 공무집행중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억압적인 말에 .회의감이 느꼈다고 했다.

학생들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할 수 있을게 뭘까 고민하다 만 28세(1996년)의 나이에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그때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에서 불모지인 민주당으로 출마했다.

지도교수마저도 “계란으로 바위치긴데 무모한 도전을 왜 하느냐”고 할 정도로 말렸다. “그래도 우리사회가 약자를 위해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정치적 환경이 아쉽더군요. 그래서 출마를 하게 됐지요. 두 번 낙선하고 세 번째 도전에 겨우 성공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다.

부산에서 유일 민주당의 아이콘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적 바꾼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는 민주당내에 있으면서 민주정치 실현을 위해 투쟁을 많이 했다. 공천과정이나 당의 운영에서 반민주적, 반개혁적 운영. 자기사람만 심고. 아집과 독선, 독단의 정치문화를 깨야한다는 바른 소리를 저 혼자 해왔다. 공천눈치에 심지어 광주광역시에 가서 민주화 인사한테도 5,18정신은 저항정신이요 민주정신 아니냐. 그런데 왜 침묵하느냐 당신들 비겁하다고 그런 이야기까지 했다고.

“당시 이 당에서는 희망이 없더라. 제가 바라는 것은 특정정당이나 이념이 아니고 국민들이 아파하고 우려하고 걱정하는 것을 해소 해주는 게 정치잖아요. 근데 자기들의 이익만 위해 쫓아가는 정치모리배를 보면서 절망스러웠다. 인간은 자기를 알아주는데 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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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권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하는 조경태 국회의원.

◇가짜 애국심 모습 보면서 제대로 역할 시가 왔다고 생각

◇소외된 분들 위해 정치해야한다는 참마음 아직 변함없어

새누리당 영입 1호였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1월 21일. 이 당에 올 때도 민주절차를 거쳐 지역주민들한테 의사를 물었다. 다수가 새누리당으로 가라고 해서 결정했다.

“왔으니까 잘되기를 바랐는데 보니까 이당도 민주당처럼 썩을 때로 썩어있고 곪을 대로 곪았다. 대통령 두 분이 구속되고 그중 한분도 탄핵을 당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아직까지 자기들 이익을 찾고 기득권 찾고 있어 안타깝다. 가짜 애국심 모습을 보면서 진짜가 한번 제대로 역할을 해야 될 시기가 왔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저도 많이 부족하지만 청년 28살의 조경태의 정신과 혼은 살아있다. 그때 가난하고 어렵고 힘없고 소외된 분들을 위해 정치해야 한다는 참마음은 아직까지 저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올라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조 의원의 정치이력은 남다르다. 자갈치 지게꾼의 아들이 국회의원 4선은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런 역경 속에서 끝끝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믿고 변함없이 성원해주신 부산 사하을 주민들, 부산시민들, 국민들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그 마음은 변함이 없이 가지고 싶다고 했다.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해 의정활동을 했다. “왜 내가사서 고생을 할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봉사 직이지 대접받는 자리가 아니거든요. 겸손하게 국민을 잘 받들고 북한으로부터 업신여김을 안당하고 당당한 나라가 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겠습니다.”

끝으로 영호남관련 정책을 개발하고 있는 조경태 국회의원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지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정치후배들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 참 괜찮은 정치인이다.”

전용모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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