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술독에 빠진 전자감독대상자 새 삶의 길 연 구병보 책임관

기사입력:2018-11-14 11:52:02
울산보호관찰소 구병보 책임관.

울산보호관찰소 구병보 책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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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슈 전용모 기자] 술독에 빠진 전자감독 대상자(63)에게 새 삶의 길을 연 보호관찰관이 있다. 울산보호관찰소 구병보 책임관이 사연의 주인공이다.
구병모 책임관이 그간 일기처럼 써내려간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녁 7시 불타는 금요일. 집에 일찍 들어와 외식하자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나는 병원으로 향하는 차안에 있다. 기분이 썩 내키지 않는다. 보호관찰소에서 차를 몰아 양산시 웅상 소재 중앙병원으로 향한다. 환하게 비치는 불빛과 달리 내 마음은 회색빛이다.

‘내가 잘 하고 있는 행동인가?’라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가족과의 귀중한 약속을 취소하고 전자발찌 대상자 병문안을 가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꼭 오늘 아니어도 큰 상관은 없다. 병원에 입원했으니 다음 주 월요일도 괜찮다. 하지만 이것도 직업병인가? 내일 모레 주말이 껴 있으니 휴일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전자발찌 업무 맡은 후 단 하루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으면서도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 듯싶다. 저녁 8시 웅상중앙병원 도착해 안내판에 붙은 환자 명단과 호실을 확인했다.
빈손으로 갈지 고민하다 먼저 온 병문안자가 있으면 멋쩍을까 싶어 병원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식혜) 한 박스를 구입했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오늘따라 더 어색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 심정의 투영인 듯.

출입문 손잡이를 밀어 안으로 들어선다. 북적이거나 비좁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휑한 기운이 감돈다. TV시청하느라 내가 나타난 줄 모르던 간병인 아주머니가 이제 인기척을 느끼고 건성으로 인사를 건넨다. 6인실에 환자는 세 명뿐이다. 한 눈에 내가 찾는 환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간이침대에 붙은 환자 딱지를 다시금 확인한다. 환자는 자고 있다. 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 뿐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순간 환자의 발목에 전자발찌는 잘 채워져 있는지, 머리맡에 추적 장치는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이쯤 되면 중증 직업병이 확실하다. ‘근데 왜 가족하나 없지! 아무리 싫어도 목숨이 오갔던 아찔한 순간이었는데...’ TV에 빠진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오늘 이 환자분 가족들 다녀 갔어요?” 돌아온 대답은 “예? 아드님 아니세요? 그럼 누구세요? 가족 분 아니세요?” 순간 괜한 걸 물어보았다 싶다.
그때 환자가 잠에서 깨어 나를 발견하고는 울먹이기부터 한다. “구 계장 왔소! 구 계장요! 고맙소! 내 계장님 때문에 살았소!” 움푹 팬 주름진 눈가 사이로 빛이 흘러내린다. 덩달아 나도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 흐르는 눈물을 보고 있자니 회색빛이던 내 마음에 불꽃이 튄다.

“구 계장 말대로 내가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으면 내 죽었을 것이요. 정말 고맙소!” 다시금 눈가에 빛이 난다.

대상자 아니 환자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앞서 양산병원에 입원해있던 환자는 오늘 새벽 2~3시쯤에 잠자다 꼼짝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몸이 도통 움직이질 않고 말도 나오지 않아 한참을 “어 어 어”하고 있었다고. 옆 동료 환자가 잠에서 깨어 간호사를 불렀고, 간호사가 119에 응급신고를 했다. 양산병원에서 나와 웅상중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응급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도 전신마비는 아니고 오른쪽 상체와 팔만 부분 마비가 됐다. 천만다행으로 조기에 발견되어 치료만 잘 받으면 상태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도 있었단다. 현재 웅상 중앙병원에 온 이유다.

“그건 그렇고 아드님과 형님 내외분은 안 오셨어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소! 구계장이 처음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큰애는 올 줄 알았는데... 하기야 내가 한 짓이 있으니 올 마음이 없었겠지. 차라리 내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 아니었겠소?” 그제 서야 잡았던 내 손을 슬그머니 놓아준다.

이제껏 내 손이 환자의 손에 잡혀 있었던 것이다. 습진으로 하얗게 군데군데 갈라진 볼품없는 손은 거칠기 짝이 없었으나 온기만은 남아 있었다.

전자발찌 대상자인 그는 결혼을 두 번 했다. 결혼 초기부터 술 문제가 심했고, 큰아들 8세, 둘째 아들 6세 때 이혼했다. 얼마 후 재혼해 아들을 또 낳았고, 생후 2개월경 별거를 시작해 곧 이혼했다. 역시 술이 문제였고 외도도 겹쳤다. 그는 술로 인한 범죄가 전부다. 주취 폭력이 15회에 만취 후 강제추행으로 전자발찌 부착자가 됐다.

그는 2016년 연말연시 나를 들쑤셔놓은 장본인이다. 2016년 12월 31일 토요일 오후 1시경 그는 집에서 만취 상태로 지도방문 한 나에게 발견됐다. 방에는 먹고 남은 소주와 막걸리 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보호관찰소에 오는 중에도 먹다 남은 소주병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허무맹랑한 말만 늘어놓았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겨우 간이침대에 누이고 내가 쓰던 모포로 몸을 덮어 잠을 재웠다. 그는 오후 7시경 잠에서 깼다.

나는 그를 식당에 데려가 해장국을 먹였다. 식사 후에도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를 훌쩍 넘었다. 몸을 심하게 떨었고 손은 사시나무 떨 듯 흔들렸다. 밤 9시 나의 연락을 받은 큰아들이 뒤늦게 보호관찰소에 찾아왔다. 부자는 인사는커녕 보자말자 말다툼이었다.

“아버지가 저한테 해 준 게 뭐가 있어요? 최소한 저를 힘들게는 하지 않아야지요?” “내는 너를 아들이라 안 여긴다. 그냥 네 집에 가라. 내버려두고!” 부자는 한바탕 다툰 후 서로를 외면했고 나는 옆에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넘게 술을 마시면 위법이라는 것과 함께 입원이 필요한 환자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긍정도 부정도 놀라지도 않았다. 대신 아버지에 대한 원망 섞인 푸념만 있을 뿐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호적을 파서라도 부자지간의 연을 끊고 싶었다는 둥.......

큰아들에게 그를 맡기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2017년 1월 1일 일요일 오후 1시경 그의 집을 다시 방문했다. 이미 그의 집에는 형님 내외, 큰아들 내외, 손자까지 와 있었다. 불행히도 그는 어제처럼 똑같이 술에 절어 있었다. 성질이 난 그의 형님이 막걸리를 집어 싱크대에 붓고는 빈병을 발로 자근자근 밟아버렸다. 가족들에게 입원치료를 권유하고는 현장을 벗어났다.

2017년 1월 2일 월요일 오후 3시경 그의 집에 다시 갔다. 막걸리 네 병을 마셨지만 “더 마시고 싶다.”며 나보고 “술 두 병을 사달라.”고 했다. 술은 마시지만 사고는 치지 않을 것이니 제발 술을 달라고 애원했다. 술을 못 마시도록 보호관찰소에 데려와 최후통첩을 하고는 오후 6시경 집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내일도 술을 마시면 병원에 입원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받았다.

2017년 1월 3일 화요일 오전 11시경 그를 찾아갔다. 또 술을 마셨을까봐 덜컥 겁부터 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어쩔 수 없이 보호관찰소에 데려왔다. 큰아들에게 전화했다. 보호자 동의로 입원시키기를 권했다.

큰아들은 울부짖었다. “그냥 자기 좋아하는 술! 죽을 때까지 마시도록 내버려 둡시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왜 못 들어 줍니까? 이번에 병원에 입원시키면 저는 아버지 죽을 때까지 병원에서 빼내지 않을 것입니다. 병원에서 죽으나 집에서 술 먹고 죽어나 똑같은 것 아닙니까?”

오후 2시경 양산병원에서 큰아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를 차에 태우고 양산병원 근처에 오후 1시쯤 도착했다. 설렁탕을 잘하는 식당에 들어가 그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몇 숟갈 뜨더니 곧바로 화장실 행이었다. 삼사일을 종일 술만 마셔댔으니 속에서 술 말고는 받아주질 않는 모양이었다.

양산병원에서 부자는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입원에 반대했다.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결국 포섭된 모양이었다. 양산병원 알코올 전문의와 내가 큰아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후에도 아들은 입원동의서에 서명하는데 한참을 망설였다. 그의 아버지는 입원 절차 수속을 밟는 내내 나를 원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양산병원에서 알코올치료를 받게 됐다.

그렇게 2주 넘게 치료를 잘 받던 중 2017년 1월 20일 금요일 양산병원에서 나에게 급한 전화가 왔다. 응급치료가 필요해 종합병원인 웅상중앙병원으로 그를 옮겼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알코올성 치매 발작으로 인한 반신마비였다. 조기 발견으로 마비 증세는 눈에 띄게 호전되었고, 일주일 후에 웅상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내내 이번에는 나의 마음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희망을 눈가에 흐르는 눈물 속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그는 나에게 말했다. “구계장 때문에 내가 살았는데 또 내가 술을 먹겠습니까? 그때 구계장이 나를 챙기지 않고 집에 방치했다면 저는 집에서 술 먹다 비명횡사했을 겁니다. 이젠 술 안 먹습니다.” 그의 말이 참일지 거짓일지 의구심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는 지금까지 전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집에 낮이고 밤이고 불쑥불쑥 찾아갔다. 그럴 때마다 그는 껄껄 웃으며 “구계장님 또 저 술 먹는지 감시하러 왔습니까?”라며 농을 건넨다.

오른쪽 반신 마비 증세는 눈에 띄게 호전됐다. 단지, 왼쪽에 비해 오른쪽이 살짝 불편할 뿐이다.

독거노인으로 관할구청에서 주거지원을 받아 임대아파트로 이사도 했다. 그는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이며 건강이 더 회복된다면 젊었을 때 직업인 방수 일을 다시 해보고 싶어 한다.

전자감독 및 보호관찰 지도감독 프로그램 참여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등 누구보다 열심이다. 한 번은 그와 함께 가족 온천탕에서 목욕을 같이 했다. 피부습진으로 각질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고, 때밀이로 묵은 때도 말끔히 없앴다.

나는 확신한다. 그에게서 떨어져나간 것은 육체의 부스러기 뿐 아니라 정신적 피폐와 몰락도 함께 라는 것을!

전용모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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