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더라인] 그대여 적화통일 걱정하지 말아요

체제경쟁은 끝… 6.25와 월남전의 시간을 빠져나와야 기사입력:2018-02-28 18:15:14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
풍경 하나. 2008년 촛불시위 때의 일이다. 시위 현장에선 ‘이명박을 오사카로’라는 구호가 간혹 울려 퍼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출생지가 오사카라는 점에서 착안된 비아냥이었지만, 이명박이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다면 전혀 나오지 않을 조어이기도 했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고등학생들 사이에선 ‘이명박이 독도를 일본에게 넘길 것’이란 루머가 돌았다.

임기 말 이명박은 독도를 일본에 넘기기는커녕 기묘한 방식으로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관계를 파탄에 빠뜨렸다. 2012년 광복절을 닷새 앞둔 8월 10일 군복을 입은 그는 일본에 미리 통보까지 하고 독도를 방문했다. 레임덕 극복하기 위해 한국민의 뿌리 깊은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쇼를 벌였다. 이후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엔 중앙정부 고위 관리가 파견되기 시작했고 일본 사회 혐한 감정의 기승에도 영향을 미쳤다.

풍경 둘. 2012년 9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란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강상중과 현무암이 일본어로 쓴 2010년작 저술의 번역이었고, 원제는 직역하자면 <흥망의 세계사 제18권 : 대일본‧만주제국의 유산>이었다. 이 저술 자체가 저 두 명을 축으로 서술되고 있단 점에서 저 번역 제목이 크게 부적절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2012년 9월이란 시점에 이 책을 번역 출간한 이유는 뻔했다. 부제는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였다. 다만 두 사람을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활동을 통해 만주국이 현대 일본과 한국에 남긴 흔적을 반추하려고 했던 저자들의 성찰적 작업이 눈에 거슬렸는지 아예 뒤에다간 “만주국과 만주친일파 그리고 박정희”란 해제를 붙였다. 그해 대선 후보 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발언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대통령을 하는 게 싫었던 사람들은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가 박근혜가 친일이었단 증거라고 해석할 것이다. 그러나 이전 몇 년 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베 일본 총리와의 면담을 티나게 피하는 등 일본을 무시하는 전략을 폈다. 일본이 진전된 위안부 대책을 가져오기 전까진 상대할 수 없단 식으로 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서로 권좌에 오르기 전부터 알았던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안부합의는 어쩌면 그런 한일관계를 내버려둘 수 없었던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풍경 셋. 2013년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 사실상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남쪽으로 물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당시 여당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함이었다. 교차검증 결과 정작 노 전 대통령이 NLL에 만들려고 했던 것은 DMZ처럼 남북으로 일정한 거리를 떨어진 공간에 조성되는 평화수역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국정원이 그 대화록을 이명박 정부의 입맛에 맞게 각색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구설수에 올랐다.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

나는 그간 한국 사회의 양대당파가 서로에 대해 가지는 끈질기고도 어긋난 환상을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라고 표현한 바 있다. 말인즉슨 이렇다. 자유한국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민주당은 다만 한국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론이 다른 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당을 ‘북한에 나라를 갖다 바치기 위해 노력하는 북한인’의 집단으로 이해한다.

반대방향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자유한국당 등은 다만 자신들보다 보수적인 집단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는 친일파의 후예이며, 강자에게 굴복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미국이나 일본에 나라를 파는 것이 유익하다고 믿는 일종의 일본인’으로 이해한다.

이 환상은 위에서 본 몇몇 풍경에서 보이듯 지지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에 쉬이 떨쳐지지 않는다. 그와 같은 발화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설명하기 얼마나 적절하느냐와는 별개로 ‘다카키 마사오’와 ‘주사파’라는 공격이 서로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환상에 기댄 집단행동은 오히려 상대편을 반대방향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곤 만다. 이명박은 독도를 방문하여 한일관계를 경색시킬 이유가 없었다. 박근혜는 아베를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들의 정치행위에 문제가 있었다면 일차적으론 그들의 책임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행위를 매번 구체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단순도식으로 내몰았던 반대편의 비판자들은 반성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일까? 이 모든 풍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명박근혜=친일파’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생각이 비슷한 지지층까지 서로 되먹임질을 하면 점점 흥분하며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풍경은 반대파를 제어하기는커녕 중도파가 그쪽을 외면하도록 했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 지지층은 박근혜가 당선될 경우 유신이 부활한다고 주장했다. 그 핵심 지지층을 벗어나면 그 말을 믿기보다는 어이없어 할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2016년 탄핵 정국에서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청와대가 계엄령을 준비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박근혜와 그 주변 인물들은 유신도 계엄령도 열망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현재의 한국과는 동떨어진 일이다. 헌법과 시민이 그러한 사태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해 가을부터 벌어진 광장 촛불이 보여주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려는 시도는 이렇듯 현대 한국 사회의 성취를 부정하는 망상적 사고로 치닫곤 한다.

-적화통일? 망상의 끝판왕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두 당파의 환상을 동등한 층위에서 비교하려고 했던 나 같은 사람도 최근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당혹스럽다. 처음에는 ‘적화통일’을 우려하는 것이 지지층 일각의 반응인줄 알았다.

그런데 출입하는 기자들의 귀띰이 ‘거기, 요즘 독립투사 분위기야’라고 한다. 급기야는 김영철 방남 정국에서 의원 입에서 6.25전쟁과 월남전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지난 26일 월요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안상수 의원의 발언이다.

“(...) 이것이 김정은한테 우리 대한민국은 다 지네들 하는 것을 환영하는구나. 이래서 어느 날 갑자기 밀고 들어올 수도 있는, 그전에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킬 때, 6·25때 얘기입니다만, 전쟁을 일으키면 남한에 있는 좌파세력들이 전부 다 봉기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 아니에요? 지금도 그런 오판을 할 수 있는 사인을 주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이런 상황이 제2의 월남화가 되는 것이 아니냐, 이런 걱정도 사실 합니다. (...) 결국 월남에서 월맹과 월남이 싸워서, 그런데 미국이 철수함으로 해서 공산화가 됐던 것 아닙니까? 그래서 30여년을 굉장히 고생을 하죠. 그런 상황, 우리도 잘못하면 이렇게 미국과 어깃장이 나서 미국이 과거의 애치슨 라인처럼, 6. 25 촉발시킨. 그렇게 해서 슬쩍 물러나고 그럴 때 그냥 어물쩡하고 북한이 넘어와서…….“

이런 뉴스를 본다면 김정은의 기분이 제법 좋을 것이다. 북한이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남쪽에서 생각한다고 한다면, 김정은이 수하들에게 할 수 있는 말도 더 늘어날테니 말이다.

6.25전쟁 때조차 김일성의 추정은 오판이었다. 이미 토지개혁이 진행 중이던 남한의 농민들은 자기 땅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에 북한 체제를 굳이 환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표준적인 해석이다. 월남의 경우도 미군이 지원한 무기를 월맹에게 팔아먹는, 6.25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월남 패망’에서 교훈을 얻자고 말하는 건 수십년 간 국군과 예비군 정훈교재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아직까지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동시대 한국의 통치자의 생각은 달랐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얘기다.

-‘기억’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정치하라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한 직후인 1976년 이른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란 게 터진다. 박정희는 이날 밤 “미친 개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로 끝나는 일기를 작성하지만, 무력사용엔 반대했다.

찬양일색 <박정희 전기>의 저자인 조갑제 월간조선 전 편집장의 기술에 따른다면, 그때 중화학공업 건설이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박정희는 평화만 깨지지 않는다면 체제경쟁에서 김일성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해 연초 박정희는 국방부 연두순시에서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 온 것은 전쟁만은 피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사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한국은 산업화는 물론 민주화를 넘어 문화산업의 세계화를 이룰 지경에 되었다. 경제규모로는 북한의 사십 배가 넘고, 재래식군사력도 압도적이다.

사실 요즘 얘기까지 갈 것 없이 1990년대말 ‘고난의 행군’에 들어섰을 때 이미 체제경쟁은 끝난 것이다. 햇볕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이전에 체제경쟁하던 이들이 건네는 물품을 뜯어 먹겠다는 태도로라도 받기 시작했을 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민주화 역시 그렇다. 한국의 보수파는 민주화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사회혼란 정도로 치부하는 관습이 있다. 북한 역시 그렇게 선전해왔다. 단합된 자신들이 서로 싸우고 비난하는 남한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통’인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에 따르면, 그렇게 ‘정신승리’하던 북한 지도부조차 2008년 촛불시위를 보면서는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저것이 무엇하는 짓이냐. 경찰은 왜 진압하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을진대 2016년 촛불시위처럼 권좌에 있는 이를 끌어내리는 광경을 보면 어땠을까. 우리는 김정은을 무슨 일을 벌일지 예측할 수 없는 이라 평하지만, 김정은이 보기엔 남한 민중이 그랬을 것이다. 도저히 통치할 수 없는 족속으로 여겼을 것이다.

적화통일 보다는 차라리 남한 절멸 쪽이 더 현실적인 발상이다. 북한 정권의 태도는 결국 본인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너죽고 나죽자’할 수 있다는 식의 협박이다. 그 길만 피한다면 시간도 남한 편이다. 체제경쟁은 이미 없다. 골치가 아픈 건 북한 주민을 달래면서 통치해야 할 김정은이다.

사십년 전의 박정희와 자한당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북한이 그때만큼의 위협도 안 되기 때문에, 전쟁도 뭐도 결국엔 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지닌 이들을 선동하는 내부정치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얄팍한 정치에 다수 유권자가 속아 넘어가리라고 생각한다면 역시 세월의 변화를 너무 무시하는 것이다. 구체적 지점에서 정부의 실책을 잡아내고 비판하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비판해야 할 이유의 맥락이 1950년대나 1970년대에 기반해서야 너무 서글픈 일이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느 시간대를 살고 있는지만을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고야 말 것이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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