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수는 서상일, 이동화, 최근우 등 혁신계 인사와 이종률, 유병묵, 조윤제 등 학자들과 협의하여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창간했다.
민족일보는 창간 후 남북협상과 민족자주통일 등 혁신 세력을 지지하는 논조를 내세웠다.
그러나 민족일보가 각종 논설과 기사 등을 통해 북한의 활동을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조용수 외 12명이 1961년 7월 23일 혁명검찰부에 의해 기소됐다.
이후 혁명재판소 상소심판부는 조용수, 안신규, 송지영 3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안신규와 송징규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조용수는 끝내 사형이 집행됐다.
이슬기 기자 law4@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