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버티기와 헛발질하는 야권의 잠룡(潛龍)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인 김정범 변호사
이미지 확대보기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에 야권의 셈법이 복잡해지면서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가 박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추진하다 여론의 역풍으로 취소한 후 이렇다 할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조심스런 태도다. 그 사이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런저런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그런(하야) 결단을 내려준다면 대통령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 뿐만 아니라 퇴진 후에도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고 말하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명예로운 퇴진을 보장하겠다는 것인지, 명예로운 퇴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혹시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사면을 보장하겠다는 뜻이라면 그야말로 경악스러울 일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계속해서 전국을 돌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서명운동’을 하고 있지만 탄핵을 당론을 정한 상태에다가 매 주말마다 집회가 열리고 있는 마당에 굳이 서명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세월호 사건 후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해 박 대통령을 직무유기 및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였다. 이미 검찰에서 조사를 하고 있고, 향후 특검이 예정된 상태에서 굳이 형사고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과 대통령 중 누구 편에 설지 결단하고 황교안 국무총리를 포함해 국무위원들은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는데 그러한 발언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할 터인데도 굳이 국무회의에 참석해서 그러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한번 살펴보자. 최순실 사건이 처음 언론에 공개된 후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날 때도 야권은 이렇다 할 로드맵이 없었다. 곧바로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총사퇴를 요구했어야 하고, 동시에 특검카드를 빼어들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탄핵발의를 추진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혹시나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 탄핵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였다. 그 후 국민들의 촛불이 들불처럼 일어나 100만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들자 그 힘에 편승해서 탄핵발의를 추진한다는 당론을 모으고 있다. 그런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 영수회담을 추진하다가 언론의 역풍에 슬그머니 취소하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보여준다. 주도권을 쥐려는 조바심에서 나온 해프닝이다. 혼란스런 정국에 야당의 뚜렷한 존재감이 없다. 길을 안내하지도 못하고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한다. 새누리당 만큼이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보니 방향설정도 불가능하다. 기회가 주어져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이유다.
지금 대통령은 혐의를 부인하면서 수사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신분이 이미 피의자로 바뀐 이상 당연히 강제수사가 가능하다.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수사를 해야 하는 것은 검찰의 책무다. 처음 대면조사를 요청했을 때는 제3의 장소에서 수사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범죄혐의를 부인하면서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당연히 검찰청으로 소환해서 조사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것은 헌법의 대원칙이다. 더 이상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모든 국민이 두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
스스로 사임하는 하야(下野)는 오로지 대통령의 자유로운 판단이다.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하야를 주장하면서 거기에만 매달릴 수 없는 이유다. 임기 중 사임을 하면 헌법에 따라서 다시 대통령을 뽑으면 된다. 하야하지 않을 경우에는 탄핵재판을 통해서 파면해야 한다. 헌법에서 탄핵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헌법 제65조 제1항).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헌법을 파괴한 사람이다. 대통령은 아무리 최고권력자라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규정한 방법대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헌법 제69조, 제78조, 제79조 등). 또한 일부 재량권을 인정하기 위해서 대통령령을 발할 수도 있다(헌법 제75조). 그런데도 그러한 규정을 따르지 않고 제왕적으로 행동하면서 권력을 남용한 것이다. 당연히 탄핵의 대상이 되며 국회가 탄핵소추를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국민들에 대하여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사건 발생 1개월이 되도록 탄핵발의를 하지 못할 정도로 헌법 파괴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하야도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결의되면 더 이상 사임할 수 없다. 탄핵결정을 받을 경우 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으면 다시 공무원이 될 수 없게 되는데(헌법재판소법 제54조 제2항) 이러한 규정을 면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든 아니면 탄핵심판을 통해서 파면을 당하든 형사처벌과는 별개의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면제받을 수 없다. 대한민국 법의 기본이다. 따라서 명예로운 퇴진 운운하는 문재인의 발언은 그 자체가 법치주의를 외면한 것이다. 다른 야권의 잠룡들도 모두 대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촛불여론에 편승하려는 것으로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줄곧 강경한 발언으로 지지율이 오르자 다른 주자들이 조바심 때문에 발언들을 쏟아 내다보니 헛발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국을 정확히 읽는 판단력이 먼저다. 그리고 방향을 설정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하야와 탄핵, 그리고 형사처벌에 관해 명확한 인식도 없는 상태에서 그때그때 여론의 동향을 파악하며 대응하려다보니 일관성이 없고, 분위기에 휩쓸려 엉뚱한 발언과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최소한 대선주자라면 우선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먼저다. 시장은 시장답게,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답게 품위를 지키면서 말이다. 또한 확고한 신념과 뚜렷한 통찰력도 있어야 한다. 국민여론에 편승하기 위해서 단기적으로 행동한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