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범 변호사 “권력의 비선실세, 신돈에서 최순실까지”

기사입력:2016-10-24 10:30:38
[로이슈 외부 법률가 기고 칼럼]
권력의 비선실세(秘線實勢), 신돈에서 최순실까지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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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차갑게 불어대는 늦가을임에도 우리 정국은 여전히 뜨겁다. K스포츠 재단과 미르재단의 설립과 함께 800억원이라는 막대한 기금을 모금하는 천부적인 능력, 그리고 유력자의 자녀가 이화여대에서 특혜를 받아 입학을 하고 학점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권력의 비선실세가 등장한다. 청와대와 여권, 그리고 학교당국은 사실이 아니라는 부인을 하면서도 명백하게 반론을 내놓지는 못한다. 재단을 급속하게 설립하고 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인 모금을 한 사실, 입학한 학생이 실세의 자녀이고, 입학과 학위취득과정이 석연치 않은 점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거나 학칙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이례적이지도 않고 특혜를 받은 것도 아니라는 답변뿐이다. 분명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특혜가 틀림없음에도 말이다. 일반인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그런 유례가 전혀 없었던 때문이다.

이때 함께 등장하는 말이 정권의 비선실세(秘線實勢)라는 단어다. 어느 정권에서나 문제가 되었다. 때로는 최고 권력자의 형제나 자녀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최측근이라는 이름으로 제3자가 등장한다. 전두환 정권, 노무현 정권, 그리고 이명박 정권은 형제들이,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자녀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측근이라는 이름을 달고 제3자가 등장한다. 비선이라는 말은 정상적인 절차와 체계가 아니라는 뜻이고, 실세라는 말은 상상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비선실세는 정상적인 지휘라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막대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세력을 지칭하는 말이다. 드러내놓지 않고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으므로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비선실세가 왜 위험한 것인지 살펴보자. 우선 국가권력의 행사는 투명해야 한다.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그러한 권한을 어떤 절차에 의해서 행사해야 하는지가 미리서 밝혀져야 한다. 권한의 근거와 행사방법이 미리 법에서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권한의 행사에 대한 책임 또한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비선실세의 권한 행사는 모두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법에 근거 하지 않고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권력의 행사는 남용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대방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권한이 행사될 지에 대한 예측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불안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근대국가에서 법이 마련된 이유는 국민에게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부여하기 위함인데 이러한 가능성이 전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법천지의 세상이 되고 법치가 아니라 인치의 세상이 열리는 위험성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역사에서 권력의 비선실세는 여러 차례 등장하였다. 흔히 고려말 공민왕 때의 신돈(辛旽)을 먼저 든다. 신돈은 보잘 것 없는 승려 신분임에도 공민왕이 발탁한다. 그는 일정한 직책을 부여받고 활동한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비선은 아니다. 그러나 주어진 직책에 비해서 권한 행사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했고, 때로는 절차를 따르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것이므로 비선실세로 봐도 무방하다. 신돈이라는 이름은 집권 후에 정한 속명이다. 그 이전. 승명(僧名)은 편조(遍照)였고, 공민왕이 내린 법호(法號)는 청한거사(淸閑居士)였다. 그의 등장은 공민왕의 꿈에 나타나면서 부터다. 노국공주의 사후 공민왕의 판단능력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등용된 것이라거나 문벌세족의 파벌 때문에 신진세력을 등용하는 과정에서 발탁된 것이라는 상반된 견해가 대립한다. 또한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요승이라고도 하고 혁명가라고도 한다. 그가 공민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서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을 설치하여 토지제도와 노비제도를 혁신함으로써 권세가와 호족들이 불법으로 탈취했던 전민(田民)을 원주인에게 돌려주게 했다. 때문에 천민이나 노예 등 백성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권문세가는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흔드는 것이었으므로 맹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다보니 ‘신돈은 양기를 북돋우기 위해 백마의 신장을 회 쳐 먹는다’거나 ‘지렁이도 산 채로 먹는다’라는 소문과 함께 상소가 빗발치게 되었고, 처음에는 신돈을 비호하던 공민왕도 궁극에는 신돈을 처단하기에 이른다. 고려사에는 신돈을 요승(妖僧)으로 낙인찍으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권문세족 중심으로 쓰인 고려사이기에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중신들의 의견을 물어서 정상적으로 등용된 것도 아니고, 또한 왕의 비호 아래 너무 광범위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으며 어떠한 통제를 받지도 않았으니 정상적인 권한행사의 방식은 아니었고, 때문에 후대에까지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드러난 비선실세 정윤회와 최순실은 그 격을 달리한다. 시작이 부모세대부터 이어지고, 최고 권력자가 전폭적으로 신임하면서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오장육부(五臟六腑)로 취급받고 있다. 비선실세의 딸이 승마를 하면서 실력에 비하여 우승을 하고, 심지어는 심판진을 마음대로 꾸려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는 여러 증언들이 나오면서 비선실세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할 정도의 불이익을 가해왔다는 폭로가 이어진다. 급기야는 온갖 특혜를 입어서 최고의 명문사학에 입학을 하고 학사관리에서도 학칙개정과 소급적용까지 해가면서 학점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일반 학생들이라면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영역이다. 거기에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의 설립과 그 과정에서 보여준 천문학적인 금액의 모금, 그 사용처가 비선실세가 세운 회사나 그 딸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이 드러나면서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들을 충격에 몰아넣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인 새누리당, 그리고 비선실세는 터무니없는 정치적 음모라고 반박을 하지만 논리적인 반박은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선 그러한 법인의 진정한 설립 주체가 누구인지, 일반적인 설립절차에 비하여 초스피드로 설립된 이유는 무엇인지, 어마어마한 금액의 모금은 어떻게 가능하였는지, 그 사용처가 왜 권력실세의 비선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형식적으로 드러난 주체는 그러한 재단을 설립해야 할 아무런 실익도 없고 뚜렷한 목적도 없다. 돈을 낸 기업 또한 자신들이 설립한 재단에 의해서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자발적으로 돈을 내야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도무지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부정입학과 학사관리에 특혜를 준 것으로 지목되는 이화여자대학교의 경우에도 구체적이면서 논리적인 반박은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치적인 언사로 ‘특혜는 절대 없었고, 있을 수도 없다’는 상식적인 언어유희에 불과한 변명뿐이다. 학칙과 절차를 바꿈으로써 어떤 학생들이 혜택을 보았는지 밝히면 될 터인데도 실세의 자녀를 제외하면 혜택을 얻은 학생들이 없었던 모양이다.

비선실세가 문제되는 이유는 우선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권력의 행사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권력행사에 어떠한 통제장치도 없다는 점, 잘못된 권력행사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주체가 없다는 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권력의 행사가 개인이나 사적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행사된다는 점이다. 물론 권력행사의 정당성은 힘의 논리 이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공적인 성격을 가져야 할 국가권력이 사유화되는 것이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스템과 절차는 한낱 장식물에 불과하고 최고 권력자의 지시라는 이름으로 불법적인 개입이 작동하는 것이다. 근대국가는 모든 권력행사가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고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비선의 권력행사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는 근대 법치국가에서는 도무지 허용될 수 없는 권한행사 방식이다.

그동안 비선실세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보자. 앞서 신돈의 경우에는 왕의 신임이 식으면서 눈 밖에 나게 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 최근에 들어와서도 최고 권력자의 형제나 자녀들 또한 편안한 길을 걷지 못하였다. 대부분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아 구속을 당했으며, 권력을 놓은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러한 굴레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정권에서 비선실세가 문제되면 최고 권력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나름대로 수사를 하고 처벌을 받으며 일정한 책임을 져왔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형제와 자녀들이 당해 정권에서 일정한 형사책임을 지면서 응분의 책임을 부담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윤회와 최순실은 난공불락의 대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최고 권력자와 수십 년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하다보니 그야말로 오장육부로 생각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비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을 가질 정도의 돈독한 관계라는 점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문제되는 것은 최고 권력자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달할 사람이나 세력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총선을 통해서 입바를 소리를 해왔던 사람들은 모두 정리하고 최고 권력자의 뜻이라면 그 무엇이 되었든 충실히 이행할 사람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최고 권력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항은 사전에 차단을 한다. 그만큼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항은 먼저 피하려 드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정권은 유구하고 역사적 평가는 계속된다는 점이다. 비록 법적인 재단을 피해간다 하더라도 준엄한 역사의 평가를 벗어날 수는 없다. 불편하다고 피하다보면 해악이 그만큼 커진다. 최고 권력자는 두루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불편한 이야기도 감내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올바른 치도(治道)를 찾게 된다.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 ‘兼聽則明 偏信則暗(겸청칙명 편신칙암)’이라는 말이 나온다. 두루 남의 말을 잘 들으면 눈이 밝아지고, 한 쪽 말만 믿으면 어두워진다는 뜻으로 당태종이 위징(魏徵)에게 군주는 어떻게 하면 현명해지고 어떻게 하면 어리석어지는 지를 묻자, 위징은 진나라의 2세 황제, 수양제를 예로 들며 간신의 말에 휘둘리면 망국의 군주가 된다고 한 순자(荀子)의 말을 인용하여 왕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현명한 권력자라면 공개적인 시스템에 기초해서 권력을 행사해야 하며 비선이나 측근 몇 사람의 목소리만 듣고 판단하는 협량(狹量)한 자세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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