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때마침 같은 방향 4차로를 진행하던 피해자 B씨가 운전하는 승용차의 좌측 앞문 부분을 A씨가 운전하는 트럭의 우측 앞 범퍼 모서리 부분으로 들이받았다.
이로 인해 B씨와 조수석에 있던 동승자가 각 2주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을 입었다. B씨의 승용차 수리비도 968만원이 나왔다.
그럼에도 A씨는 정차해 피해자들을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A씨는 “사고발생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차량을 운전한 것일 뿐이므로, 구호 등의 조치 없이 도주하려는 고의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무죄 및 공소기각(도주의 범의 불인정)으로 판단했다.
도로교통법 위반 무죄에 대해 재판부는 먼저 “교통사고 경위와 피해 규모, 피고인의 운전 경력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사고 발생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 인식하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도주하지 않았는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는 하나, 피고인이 교통사고 발생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도주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다소 부족하다”고 말했다.
A씨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사고 당시 약간의 미동 내지 덜컹거림을 느꼈으나 백미러를 통해 특이사항을 발견할 수 없어 단순한 노면의 굴곡 등을 원인으로 생각하고 계속 트럭을 운전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들의 차량이 충돌할 때 ‘쾅’하는 충격음이 상당히 크게 발생되는 등 사고로 인해 작지 않은 소음이 생겼다”며 “그러나 피고인은 트럭의 보조석 창문을 열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운전하고 있었던 데다가 소음성 난청으로 청력이 좋지 않으므로, 그와 같은 충격 소리를 듣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또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피고인이 교통사고를 내고 브레이크를 밟는 등 약간 멈칫하다가 그대로 진행한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지만, 피해자들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에 의하면, 피고인은 교통사고 발생 직후 브레이크를 밟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전국화물자동차공제에 가입돼 있어 교통사고를 일으키더라도 그로 인해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이 그다지 크지 않고, 음주운전을 했다거나 그 밖에 사고 후 구호 등 조치 없이 도주할 만한 이유나 동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게 하는 증거에 의해야 하고,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모두 보더라도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한편, 교통사고를 일으킨 차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른 공제에 가입된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인데, A씨가 운전한 트럭은 사고 당시 전국화물차공제조합에 가입돼 있어 검사의 공소사실은 공소제기 절차를 위반해 무효에 해당된다며 공소기각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