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국가는 감시 대상…‘국정원 사찰의혹’ 박원순 승소”

국가가 박원순 시장 상대로 낸 2억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패소 기사입력:2012-04-06 15:24:51
[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민간사찰 의혹을 제보했다가 국가(대한민국)로부터 명예훼손에 따른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승소했다.

대법원 전경

이번 소송은 과연 국가가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판결을 요약하면 국가기관의 업무처리가 정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하므로 국가는 ‘원칙적’으로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적격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만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극히 제한적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국가정보원이 사실상 ‘국정원 직원의 사찰을 받았다’고 밝힌 방송인 김미화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방침이어서 과잉대응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 판결까지 나와 국정원으로서는 부담스럽게 됐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대한민국이 “국정원이 민간사찰을 했다고 허위사실을 언론에 제보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직하던 지난 2009년 6월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시민단체와 관계를 맺는 기업 임원들까지 전부 조사해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통에 많은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힘겨운 상태다.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곳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명백한 민간사찰이자 국정원법 위반”이라며 국정원의 민간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국가는 “기사를 통해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독자들에게 국정원이 직무범위를 넘어 다른 국가기관이나 국민을 사찰하고 의무 없는 행위를 강요했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며 “박원순의 언론제보 행위로 국정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됐고, 이는 곧 국정원을 산하 국가기관으로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명예가 훼손된 것이므로, 박원순은 국가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냈다.

반면 박원순 상임이사는 물론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소송은 국민의 국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봉쇄할 의도로 제기된 것으로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소권 남용에 해당한다”며 반발했다.

이에 대해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14민사부(재판장 김인겸 부장판사)는 2010년 9월 대한민국이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낸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나 국가기관의 업무를 정당하게 처리하고 있는지 여부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국가로서는 당연히 이를 수용해야만 하는 점, 형법상 국가는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국가는 잘못된 보도 등에 대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활용해 스스로 진상을 밝히거나 문화체육부장관을 통해 국정을 홍보할 수 있으며, 언론사 등을 상대로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 등 이미 충분하고도 유효적절한 대응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만약 아무런 제한 없이 국가의 피해자 적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 및 기능이 극도로 위축돼 자칫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으며, 국가 산하에는 실로 다양하고 많은 국가기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송이 남발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적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국가는 언론매체나 제보자의 명예훼손 행위가 감시ㆍ비판ㆍ견제라는 정당한 활동의 범위를 벗어나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며 국가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언론제보 행위가 다소 근거가 부족하거나 진위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재판부는 “단지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명백한 허위사실의 유포나, 악의적인 비방과 같이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 범위를 현저히 일탈하는 남용 행위에 대해서까지 법적인 보호를 외면할 필요는 없는 점, 우리 형법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國旗) 또는 국장(國章)을 손상하거나 비방하는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어 일정한 경우 국가도 명예와 관련된 법익의 보호 대상으로 보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비록 국가라 하더라도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가가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13민사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2011년 12월 국가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재판부는 먼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서도 명백한 허위사실의 유포나 악의적인 비방과 같은 언론ㆍ표현의 자유 범위를 현저히 일탈하는 남용행위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음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유지해야 할 공익이 있다”며 “국가인 원고도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가기관의 업무처리가 정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하므로, 이러한 감시와 비판기능은 보장돼야 하고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서는 안 된다”며 국가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이 기사는 그 내용이 공적인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언론제보 행위는 피고가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거나 국가기관의 업무처리의 공정성 여부에 관한 감시와 비판기능의 중요성에 비춰 허용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으로서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