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안기부 X파일’ 보도한 이상호 기자 유죄 확정

통신보호비밀법 위반 혐의…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도 유죄 기사입력:2011-03-17 17:30:00
[로이슈=신종철 기자] 삼성그룹의 정치인들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과 이른바 ‘검찰 고위간부 떡값’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MBC 이상호 기자와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현 대통령실 정무1비서관)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MBC(문화방송) 이상호 기자는 옛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이 1997년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정치권 동향 및 대권 후보들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등에 관해 논의한 대화를 도청해 작성한 이른바 ‘안기부 X파일’ 테이프 등을 입수해 2005년 7월 보도한 혐의로 2006년 기소됐다.

◈ 1심 “이상호 무죄…언론에 부여된 사회적 책무 다하기 위해 부득이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4형사부(재판장 김득환 부장판사)는 2006년 8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MBC 이상호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안기부 X파일’에 담겨 있던 내용은 주로 홍석현과 이학수 사이에서 논의된 대통령 선거 정국의 기류 변화에 따른 여야후보 진영에 대한 삼성의 정치자금지원 문제와 정치인 및 전ㆍ현직 검찰 고위관계자에 대한 ‘추석 떡값’ 등의 지원 문제로서, 이를 통해 삼성그룹이 대통령 선거 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과정에서 공권력 행사의 최일선에 있는 검찰조직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X파일에 담겨 있던 내용은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공익적 사항과 직결돼 있어 그 정보에 대한 공공의 관심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언론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므로 이를 보도하는 것이 부득이했다”고 덧붙였다.

또 “보도에 있어 X파일 대화 속에 나오는 실명이 공개되는 등 개인의 인격권 침해의 요소가 다소나마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문화방송의 보도가 수단과 방법에 있어 상당성을 결여했다고 보이지 않고, 또한 비록 피고인 이상호나 문화방송이 최초 불법적인 자료를 취득하기는 했으나, 그 보도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법성에 깊이 오염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오히려 X파일 대화의 당사자는 삼성그룹 총수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이학수와 중앙일간지 최고경영자인 홍석현이며,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여야 대선후보를 비롯한 정치인이거나 전ㆍ현직 검찰 고위관계자로서 공적인물들로서 불법적인 정치자금이나 대선자금, 검찰 떡값 등의 지급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이를 일부 실행했다고 충분히 의심할만한 자료가 있는 이상, 언론보도로 입게 되는 어느 정도의 인격권의 침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보도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 유죄…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 선고유예

한편, 재판부는 문화방송 기자로부터 안기부 X파일 녹취록과 녹취보고서를 입수해 2005년 9월 월간조선에 ‘유령처럼 떠돈 안기부 X파일 전문 공개’라는 제목으로 녹취록 전문을 게재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월간조선 보도는 문화방송 보도와 달리 녹취록 전문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도했고, 그 내용 중에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와 관계가 없는 내용 또한 그대로 포함돼 있어 수단과 방법에 있어 상당성 내지 비례성을 갖지 못해 위법성의 조각이 인정될 여지가 없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도 일부 작용한 점을 등을 참작해 선고유예 판결했다.

◈ 항소심 “이상호 기자 유죄…통신비밀보호법이 정한 울타리 엄하게 지키고자”

그러자 검찰은 “이상호 기자의 보도행위에 위법성의 조각이 인정될 여지가 없고, 김연광에 대한 선고유예가 지나치게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제9형사부(재판장 김용호 부장판사)는 2006년 11월 MBC 이상호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유죄를 인정해 징역 6월 및 가격정지 1년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김연광 편집장에 대한 항소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거나 사회질서가 교란돼 국민의 생명과 신체 등에 심각한 위험이 야기되는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통신비밀의 공개 누설행위에 대한 위법성 조각을 쉽사리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안기부 X파일’이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의 산물임에 주목한다”며 “재벌과 언론사주가 8년 전 대선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정치인이나 검찰 고위직에 떡값을 주는 문제를 상의하고 일부 실행했다고 의심할 만한 자료는 물론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불법 도청을 응징하고 사생활의 자유와 통신비밀보호를 위해 공개를 처벌하기로 한 특별법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X파일 대화 내용이 국가의 안전보장, 사회질서의 수호 등을 위해 부득이하게 보도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고 평가하기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상호가 투철한 기자 정신으로 적극적이고 용감하게 정보원을 추적, 취재한 활동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고 본다”면서도 “보도가 단순히 추상적인 내용으로 안기부에 의해 대선기간 중 재벌 실세와 언론사주 사이의 사적인 대화까지 불법 도청한 사실이 있었고, 주요 내용이 무엇이며, 증거로 녹음테이프까지 확보됐음을 보도하는 정도를 넘어서, 주고받았다는 돈의 액수까지 밝히는 등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보도한 점 등에 비추어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이 있었다고 평가하기에도 부족하고, 더구나 실명을 공개함으로써 당사자의 인격권을 더욱 크게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또 “문화방송이나 이상호는 불법 도청된 X파일 대화 내용의 공개가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당시는 X파일의 배경이 된 대선이 끝난 지 8년이 지났을 때여서 국가 정치질서의 전개에 어떠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만한 것이라 함은 지나친 것이고, 그 보도가 시급히 요청되지 않았다”며 “과연 공공의 관심이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도청자료를 공개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물론 이상호는 국가기관의 불법도청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언론사주와 재벌이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실상을 공개했고, 그 동기나 목적에 있어 실정법을 위반하더라도 특종을 하겠다는 공명심이 아닌, 꼭 국민에게 알려야 하겠다는 역사적 사명감으로 이와 같은 행위에 이르렀다면 그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받아 마땅하다”면서도 “그러나 위와 같은 여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은 양형에서 참작할 사유에 불과할 뿐”이라고 유죄로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은 적어도 도청에 의해서는 개인간 대화 내용이 벌거벗겨지지 않는다는 법의 울타리를 치고 있고, 그 울타리 안에서 때로는 추잡하고 부끄러운 대화들이 오갈지도 모른다”며 “불법 도청의 내용을 열어 보니 국민이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이었다고 하여 공개의 위법성을 쉽게 조각해 이 울타리를 열어둔다면, 어느 순간 권력이나 재력 있는 세력은 먹음직한 독과실을 얻고자 타인의 밀실을 엿듣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통신비밀보호법이 정한 울타리를 엄하게 지키고자 하는 이와 같은 이유로 법원은 피고인 이상호의 행위, 나아가 당시 보도에 참여한 대한민국 모든 언론매체의 보도ㆍ출판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유죄임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보도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나 목적에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점, 다른 언론매체도 유사한 보도를 했으나 유독 이상호와 김연광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로 기소된 점 등을 참작해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 대법원 “보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유죄 확정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는데, 불법 감청ㆍ녹음 등에 관여하지 않은 언론기관이 감청 사정을 알면서도 대화의 내용을 보도해 공개하는 경우 그 공개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지가 이 사건의 쟁점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17일 ‘안기부 X파일’을 보도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MBC 이상호 기자와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현 대통령실 정무1비서관)의 상고(2006도8839)를 기각하고, 각각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의 형을 선고유예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불법 감청과 녹음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언론기관이 불법 감청된 것을 알면서도 이를 보도해 공개하는 행위가 형법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려면, 보도의 목적이 불법 감청 등의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한 것으로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대화내용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경우이거나, 이를 공개하지 않으면 공중의 생명ㆍ신체ㆍ재산 기타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와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언론사가 불법 감청 결과물을 입수하는 과정에서 위법한 방법을 사용하거나 적극적으로 관여해서는 안 되고, 비상한 공적 관심사항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라도 필요한 부분에 한정해 보도함으로써 통신비밀의 침해를 최소화해야 하며, 언론이 보도로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가 통신비밀 보호에 의해 달성되는 이익 및 가치를 초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이상호와 문화방송이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을 고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X파일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고 보기 어렵고, 위 대화는 보도시점에서 8년 전의 일로 당시 정치질서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한 이상호는 도청자료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녹음테이프의 제공을 요구하고 사례비 명목의 돈을 지급하는 등 그 취득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법원의 가처분결정의 취지에 반해 대화 당사자들의 실명과 구체적인 대화내용을 그대로 공개해 방법의 상당성도 결여한 점 등을 종합하면 보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이인복 대법관, 무죄 취지 반대의견

그러나 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이인복 대법관 등 5명은 이상호 기자에게 무죄 취지의 반대의견을 냈다.

먼저 “도청자료에 담긴 대화 내용은 여야 대통령 후보 진영에 대한 대기업의 정치자금지원 문제와 정치인 및 검찰 고위관계자에 대한 추석 떡값 등의 지원 문제로서,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대통령 선거와 검찰조직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행태는 민주적 헌정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으로서 매우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 대화가 보도시점으로부터 8년 전에 이루어졌지만 재계와 정치권 등의 유착관계를 근절할 법적ㆍ제도적 장치가 확립됐다고 보기 어려운 정치환경 등을 고려하면, 시의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상호가 녹음테이프의 제공을 요구한 것은 도청자료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고, 그 과정에서 취재 사례비조로 돈을 지급했으나 이는 취재의 관행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사례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대법관들은 그러면서 “이상호와 문화방송은 도청자료 중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만을 보도했고, 그 과정에서 대화 당사자 등의 실명이 공개되기는 했으나, 대화 내용의 중대성 및 이들의 공적 인물로서의 성격을 고려하면, 보도 방법이 상당성을 결여했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통신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과 비교할 때, 보도에 의해 얻어지는 이익이 우월해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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