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차석인데 판검사 못된 문재인 32년만 판사 법복 입어

울릉도 간첩단 사건 소재 연극 <상처꽃 : 울릉도 1974> 재심 재판정 배석판사로 까메오 출연 기사입력:2014-04-13 17:03:08
[로이슈=신종철 기자]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하고도 학생운동 전력 탓에 판사ㆍ검사로 임용되지 못했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사법연수원 수료 후 32년 만에 판사로 법복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좌측부터연극에출연한문재인배석판사,송기인재판장,안병욱배석판사(사진출처=문재인블로그)

▲좌측부터연극에출연한문재인배석판사,송기인재판장,안병욱배석판사(사진출처=문재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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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의원은 지난 11일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열린 <상처꽃 : 울릉도 1974>라는 연극에서 법복을 입고 배석판사로 까메오 출연한 것.

문 의원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 차석으로 수료하는 영예를 안았다. 차석이면 자신이 원할 경우 판사든 검사든 될 수 있을 정도의 빼어난 성적이었다.

하지만 1975년 대학 시절 유신반대 시위를 하다 학생운동으로 투옥돼 서대문구치소에서 수감되는 등 시위 전력 탓에 판검사 임용의 꿈은 좌절돼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연극단원들과기념촬영(사진출처=문재인블로그)

▲연극단원들과기념촬영(사진출처=문재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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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꽃 : 울릉도 1974>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과 재심 권고로 2014년 1, 2월 재심 재판에서 간첩죄 관련 전원 무죄를 받은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유신 독재시대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간첩 사건을 조명하고, 그로 인한 인권 침탈과 상처 후유증, 그리고 그 치유에 관한 작품이다.
이날 연극 재심 재판정에서 재판장은 송기인 신부가 맡았다. 송 신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제1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배석판사로는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가 자리했다. 안 교수는 과거사정리위원회 제2대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문재인 의원도 이 재판부의 배석판사로 연극에 참여했다. 물론 배석판사이기에 대사는 없어 그의 연기력(?)을 볼 수 없었다.

▲연극이끝나고무대인사하는문재인의원등인극배우들(사진출처=문재인블로그)

▲연극이끝나고무대인사하는문재인의원등인극배우들(사진출처=문재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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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때 시작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5년 동안 1만1000여건의 과거 사건을 재조사해, 약 8400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2010년 위원회 활동이 종료됐다. 아직도 풀지 못한 사건이 많아 최근 위원회 활동을 재개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의원은 연극이 끝나고 “빚을 제대로 갚지도 못했는데 그들이 다시 온다. 가슴이 저립니다”라고 말했다고 문재인 의원실이 전했다.

<상처꽃 : 울릉도1974>는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5월 31일까지 공연한다.
◆ 문재인 의원은 누구?

▲연극끝나고나오는문재인의원(사진=블로그)

▲연극끝나고나오는문재인의원(사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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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의원은 1953년 경남 거제 출신으로 부산 남항초등학교, 경남중학교, 경남고를 졸업하고 1972년 경희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1975년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으로 투옥돼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1978년 육군 병장(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만기제대 후 1980년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해 치러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 차석으로 수료하는 영예를 안았다.

판사나 검사로 임관할 정도의 빼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1975년 대학 시절 유신반대 시위를 하다 학생운동으로 투옥돼 서대문구치소에서 수감되는 등 시위 전력 탓에 판검사 임용의 꿈은 좌절됐다.

이에 그해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문재인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법시험 합격은 1980년 5ㆍ18 계엄확대 때 계엄포고령위반으로 구속돼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있을 때 발표가 났다. 그때만 해도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바로 ‘영감님’이라고 불리던 문화가 남아 있을 때였는데, 내가 유치장에 갇혀 있으니 경찰은 축하차 온 학생처장, 법대동문회장 같은 분들이 유치장으로 들어와서 함께 소주파티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또 “급기야는 유치장 안에서 외부 인사들과 함께 노래까지 불렀으니 여러모로 착잡하고 비분강개한 기분속의 기쁨이었고, 어쨌든 그 덕분에 며칠 후 석방됐고, 제 삶에서 극적인 전환점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에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는데, 첫 직장은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에서 시작했다.

이후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 YMCA 이사,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ㆍ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부산 NCC 인권위원, 불교 인권위원, 천주교 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사)노동자를 위한 연대 대표, 부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역임하며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또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1987년 부산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시민사회운동을 계속해 나갔다. 1995년에는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했고, 2002년에는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며 자연스럽게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정치권에 발을 들어놓게 됐다.

문재인 의원은 자신이 가장 즐거웠던 경우를 사법시험에 합격한 때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를 꼽는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2005년 청와대 민정수석, 2004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2007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노무현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이후 2010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문재인 의원은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그해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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